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강원도

경북교육삼락회원님들 모시고 :<옛 생각에 젖어. 성서방네 처녀. 바로 동이의 모친을 찾아가는 착잡한 심정으로...> 우리들은 봉평 여행을 갔다

노촌魯村 2014. 10. 19. 17:19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 때가 가을이라 꽃은 없고 메밀만 있드라... !!!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나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 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무어라고, 병을 비관해서 죽은 것이다

—빚 때문에 움치고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웃 사람한테 참을 수 없이 모욕을 받은 때문이다

—아니냐, 사실은 술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도 아침 쌀이 없었던 것이다

모두 구구하다

허나 맨 마지막에 이웃집 할머니는 나즉히, 까맣게, 말했다

—「그가 사랑하던 강아지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아내도 아들도

물론 손자도 없이

오직 한 마리 강아지를 사랑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강아지가

아 그 강아지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29세 허생원에게 있어 가장 기쁜 날이라면 나귀를 장만한 날이었다.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그 이전에도 나귀에 짐을 싣고 장을 돌아다녔지만, 병으로 맥없이 죽자 새로 장만한 것이다.

몇 살 되지 않은 나귀를 ‘백근’이라 부르며 허생원은 좋아했었다.

백근이나 되는 짐도 문제없이 싣고 다니는 힘 좋은 나귀가 되라고 붙여준 이름이다.

   

          

  

이효석 생가 터

 

 

 

 

 

이 날 우리는 <막국수+전병+감자 떡+봉평 메밀 막걸리> 점심 하나는 품짐하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