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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구의 뿌리, 달성(국립대구박물관 개관20주년 기념 특별전시) (1)

노촌魯村 2014. 12. 10. 09:36

 

대구를 대표하는 달성유적(達城遺蹟)은 성곽(대구 달성)과 고분군(달성고분군)으로 이루어진 복합 문화유적이다. 현재 달성공원으로 더 잘 알려진 대구 달성(사적 제62호)의 성벽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반면 달성의 서쪽과 남쪽에 자리한 달성고분군(비산동·내당동고분군)은 1920년대부터 서서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오늘날 겉으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달성유적에 대한 최초의 고고학적 조사는 1914년에 이루어졌지만, 고분 8기를 발굴했던 대규모 조사는 1923년에 진행되었다.
2014년은 달성유적의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진지 100년이자, 국립대구박물관이 문을 연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대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달성유적에서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문화유산을 공개하는 특별전을 마련하였다. 또한 이 전시는 국립대구박물관이 진행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자료 정리사업의 중간 결과물이기도 하다.(출처:국립대구박물관)

 달성공원 정문

 달성공원 정문(안쪽에서...)

                                                                 위의 사진 클릿하시면 원본 사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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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大邱 達城. 사적 제62호. 대구 중구  달성공원로 35 (달성동))

평지의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높이는 일정치 않으나 4m정도이며, 둘레는 약 1,3㎞이다.
성벽의 아랫부분에서 초기철기시대의 조개더미와 각종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지방의 중심세력이 성장하여 초기적 국가 형태를 이루면서 쌓은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경주의 월성처럼 평지에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달성은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초기 성곽의 전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쌓았고, 성벽 윗부분에는 큰 돌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어 후대에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는 조선시대 전기까지 군대의 창고가 있었고 우물과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성의 서남쪽으로 연결된 구릉지대에는 돌방무덤(석실분)이 많이 흩어져 있고, 무덤에서 금동관을 비롯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대구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에 있어 가장 이른 시기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출처:문화재청)

 

 

 

 

 

 

 

 

 

 

금동관 대구 당성고분군 37호 1곽 삼국시대 

 

 

 

 

 

 

 

 

 

 

 

 

 

 

 

 

 

 

 

 

 

 

 

 

 

 

 

 

 

 

 

굽다리접시(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고리자루큰칼(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재갈(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발걸이(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말띠드리개((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말띠드리개(재현품)

십자형 장식구((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안장(재현품)

 

손칼((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낫((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미늘쇠((대구 달성고분군 37호 2곽. 삼국시대)

 

 

 

 

 

 

 

 

 

 

 

 

 

 

 

 

 

 

 

낫( 대구 달성고분군 34호 1곽. 삼국시대)

 

 

 

 

짧은목항아리(지주 제출분. 삼국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