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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구미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龜尾 水多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노촌魯村 2016. 4. 24. 20:32


수다사(水多寺) :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에 위치하고 있다. 『수다사약지(水多寺略誌)』에 의하면, 830년(흥덕왕 5)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연악산 상봉인 미봉(彌峰)에 백련이 한 송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절을 창건하여 연화사(淵華寺)라 하였다고 한다.

976년(경종 원년)에 화재로 소실되었고, 1185년(명종 15)에 각원대사(覺圓大師)가 중창하여 사명을 성암사(聖巖寺)라 하였다. 이후 1273년(원종 14) 큰 수해를 입어 비로전·나한전·시왕전·청천요사(淸泉寮舍) 등만 남아 있었다.

1573년(선조 5) 사명대사가 극락전을 중수하고 대웅전이라 개칭하고 청천료(淸泉寮)를 수리하여 극락당이라 개칭하고 만세루(萬歲樓) 24칸과 9개 방사(房舍: 스님들이 거처하는 방)를 건립하고 절 이름을 수다사라 개칭하였다. 그러나 1705년(숙종 30) 화재로 인하여 대웅전·시왕전·극락당 등만 남게 되었다.

조성 연대가 알려진 불상은 1186년(명종 15)에 각원대사가 조성한 지장보살상이다. 현재 명부전에 있는 「칠황지옥도」는 전국적으로도 희귀한 벽화로 상태가 완전하며 십대왕상이 그려져 있다. 1981~1982년에 걸쳐 5천만 원을 들여 명부전을 보수하였다. 현재 수다사 경내에는 대웅전·명부전·삼층석탑·동종·부도·목조지장보살좌상·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龜尾水多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4호.경북 구미시 무을면 상송리 산12번지)

연악산(淵岳山) 수다사는 신라 흥덕왕 5년(830) 진감선사에 의하여 개창되었다. 그 후 고려 경종 원년(976) 화재로 인하여 건물이 다소 소실되고 극락전과 청천료만 남았다. 다시 명종 15년(1185) 각원대사에 의하여 대대적인 불사가 이룩되었다. 그 후 원종 14년(1273) 대수해로 인하여 대부분의 전각이 유실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명대사가 중건하여 절의 이름을 수다사라 하였다.
대웅전 내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근래의 개금불사로 인하여 외형상 목조의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정도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소나무의 결이 보인다. 나발의 두정(頭頂)에 약간의 육계의 흔적이 보이고, 가늘게 뜬 눈, 코, 입술 등의 조각 수법이 정제되어 있으며, 우너만한 상호와 짧은 양 귀, 목에 둘러진 삼도가 조화를 이루어 위엄이 있어 보인다. 법의는 통견으로 의무늬 조각이 세련되었으며, 무릎 부분이 높고 넓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사찰측에 의하면 원래 삼존상이었으나 양 협시는 외부로 반출되어 대세지보살상은 구미 원각사에 봉안되고 있고, 관세음보살상은 대구 서봉암에 옮겨 봉안되었다.
이 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 유물은 도난 당하였지만, 다행히 구미 원각사 대세지보살상의 복장에서 불상 조성기가 확인되어 아미타여래좌상의 조성연대와 유래를 파악하는데 기본 자료가 되고 있는 기록에 의하면 순치(順治) 6년 9월에 일선부의 서쪽에 위치한 연악산 수다사에서 아미타불과 두 협시보살의 삼존상을 조성했다고 한다.
수다사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형면에서 약간 앞으로 구부린 모습이다. 비교적 높은 무릎과 넓은 무릎폭 등에서 조선 후기 목조불상의 뚜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원각사 대세지보살상의 복장유물 가운데 포함된 조성기에 순치 6년이라는 조성시기가 기록되어 있고, 조성기의 종이질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조성시기가 17세기 무렵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이 불상은 미술사적 측면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시대적 특징을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출처:문화재청)

수다사 대웅전에 모셔진 이 불상은 조선 후기 목조불상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 수다사에는 이 불상을 포함하여 삼존불이 모셔져 있었는데, 한 불상은 선산읍 원각사에 봉안되어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2호로 지정(1999년 8월)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대구의 서봉암에 이안되었다고 하나 현재 그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함께 조성된 원각사의 목조보살좌상에서 확인된 불상조성기에 따르면 고려 명종 원년(976년) 화재로 건물이 다소 손실되고 극락전과 청천료만 남았다. 다시 명종 15년(1185년) 각원대사에 의하여 대대적인 불사가 있었다. 그후 원종 14년(1273년) 대수해로 대부분의 전각이 유실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사명대사가 중건하고 수다사로 명명한 유서깊은 사찰로 전통사찰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 구미시청 자료)

* 청 순치(順治) 6년 : 1649 기축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조형 면에서 약간 앞으로 구부린 모습이다. 비교적 높고 넓은 무릎 폭 등에서 조선 중기 목조 불상의 뚜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불상의 복장 유물(腹藏遺物)은 도난당하였지만, 다행히 선산읍 원각사 대세지보살상의 복장에서 불상조성기(佛像造成記)가 확인되어 조성 연대와 유래를 파악하는 기본 자료가 되고 있다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龜尾 水多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의 대좌 : 용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