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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碑)

노촌魯村 2016. 7. 2. 22:58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碑. 국보 제59호.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0번지)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67)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지광국사탑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출처 : 문화재청)


◇시대 : 11세기(1085년, 고려 선종 2), 고려시대 지광국사의 행적이 기록된 탑비
◇내력 : 이 탑비는 지광국사(智光國師)의 행적을 기록되어 있으며, 지광국사의 사리를 모신 현묘탑(국보 101호)은 우리나라 부도 중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것으로, 원래 이 절에 있었으나, 지금은 경복궁에 옮겨져 있다. 비문은 11세기 석비를 대표하는 걸작품으로서 비석의 재질은 연한 청색의 점판암이다. 글은 고려 초의 문장가인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구양순체로 썼다. 비의 앞면은 지광국사가 수도한 내력을 적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海鱗, 984~1070)의 속성이 원씨(元氏)로 원주의 토착세력 출신이었다. 법고사 관웅대사밑에서 수학하고 관웅대사를 따라 개경에 들어가 준광에게 출가하였으며 16세때 용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004년(목종 7) 21세에 승과에 합격한 이후 법상종 승려로서 대덕(大德)이 되었다. 고려 초 현종은 현황사를 창건하고 대대적으로 법상종 교단을 지원하였는데, 혜린은 71세인 1054년(문종 8) 개경에 있는 현화사 주지를 맡아 경전을 판각하였다. 그는 삼중대사․승통․왕사의 칭호를 받았고, 74세때인 1057년(문종 11) 봉은사에서 국사(國師)로 추대되었으며, 1070년(고려 문종 24) 이 절에서 돌아가셨다. 뒷면에는 1370여 명에 이르는 국사의 제자 이름 및 인원수를 적었다. 비석을 세운 연대는 1085년(고려 선종 2)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식적 특징 : 인근에 지광국사 현묘탑이 있었으나 이탑은 현재 경복궁내에 있다. 기단 사방에 각형 초석이 배열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탑비는 보호전각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신은 귀부위에 방형 비좌를 조성하고 홈을 판 다음 비신 하단에 장부를 내여 맞추어 세운 석비이다.  비석의 윗 부분인 이수(螭首)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 중심부는 탑의 상륜부와 같이  하늘을 나는 천녀(天女)․해․달 등과 함께 불교의 이상 세계인 수미산(須彌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복발위에 연꽃이 조각된 세 개의 보륜이 올려져 있다. 이수(螭首) 하단부는 탑의 탑신석을 전사한 것으로 건물 추녀가 하늘로 활짝 벌려 있는 모습처럼 네 귀퉁이와 그 사이에 꽃을 조각하여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중간 중간 보이는 두 개의 연꽃잎과 구름 속의 용(龍)을 환상적인 조각은 암막새 기와를 불교적 맥락으로 조형화 한 창의적인 도상으로 평가된다. 기단부가 2단의 장대석으로 되어 있는 점은 외벌대 장대석으로 기단이 조선된 영월 흥녕사 대사탑비와 다른 점이다(출처 :원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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