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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성

오토재(五土齋)

노촌魯村 2017. 7. 2. 14:58


고려금자광록대부태자첨사의성군신도비(위치 : 경북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김석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한 후 고려 태조 왕건의 장녀인 낙랑 공주와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석이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의성 김씨는 김석의 8세손 김공우(金公瑀)의 대에서 크게 번창하였는데, 첫째 아들인 김용비가 태자 첨사(太子詹事)를 지냈고, 둘째 아들인 김용필(金龍弼)은 수사공(守司空)을, 막내인 김용주(金龍珠)는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의성 김씨 계파는 이들을 중시조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용비의 후손으로 김성일(金誠一), 김우옹(金宇顒)이 배출되었고, 김용필의 후손으로는 김안국(金安國), 김정국(金正國) 형제가 배출되었다. 조선 말의 학자로는 김흥락(金興洛)과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김창숙(金昌淑), 의병장 김하락(金河洛) 등이 있다.

김용비는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이 쳐들어 와 안동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몽진했을 무렵 의성 일원에서 활약한 도적의 무리를 다스려 소란한 민심을 수습했다. 그 공으로 추절 보절공신(推節 保節功臣) 의성군(義城君)에 책봉되었으며, 금자 광록대부(金紫 光祿大夫) 태자 첨사(太子 詹事)를 지냈다. 김용비가 의성군에 책봉되면서, 후손들이 그를 의성 김씨의 중시조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토재(五土齋)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오토재(五土齋)는 의성 김씨 중시조인 김용비의 위패를 안치하고 제향을 올리는 재실이다. 원래 의성군 백성들이 김용비의 공덕을 기려 의성읍 중리리에 진민사(鎭民祠)을 세우고 향사(享祀)를 이어 왔는데, 1868년 오토재로 옮겼다고 한다. 오토재는 1987년부터 2년간에 걸려 중창하였다. 김용비의 묘소 역시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에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진민사鎭民祠 들어가는 진선문進善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