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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丹陽 香山里 三層石塔)

노촌魯村 2017. 8. 19. 07:36


단양 향산리 삼층석탑(丹陽 香山里 三層石塔.보물 제405호.충북 단양군 가곡면 향산1길 24 (향산리))

단양읍에서 동쪽으로 16㎞ 떨어진 산골짜기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는 탑이다. 주변에 자기조각들과 기와가 널려 있어서 이 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1935년경 탑 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졌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이다. 기단은 여러 장의 길고 큰 돌로 바닥돌을 놓고 그 위에 쌓은 모습이며, 각 모서리와 각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몸돌에도 모서리 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특히 1층 몸돌에만 문짝 모양의 조각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수가 층마다 4단이고, 지붕돌 위에는 2단의 괴임돌을 두었다. 추녀 밑은 반듯하고, 지붕돌 윗면의 경사 역시 온화하여 네 귀퉁이의 선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있다.
석탑의 형태가 우수하고 비례도 충실하며, 조각수법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단정한 탑의 조형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문화재청)

주민들의 힘으로 다시 찾은 아름다움향산리삼층석탑

신라 19대 왕인 눌지왕(417~458) 때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묵호자는 향산사(香山寺)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 후 그가 열반하자 그 자리에 제자들이 석탑을 세우고 묵호자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사찰이 소실된 이후 그 터는 400여 년간 폐허로 남아 있고, 보물 제 405호 향산리삼층석탑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석탑 주변에 자기 조각과 기와가 널려 있어서 이곳이 절터엿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절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1935년경 탑속의 사리를 도둑맞으면서 허물어졋던 탑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출처:단양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