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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 사인암(丹陽 舍人巖)

노촌魯村 2017. 8. 19. 03:48





단양 사인암(丹陽 舍人巖.명승  제47호.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산27번지)

「단양 사인암(丹陽 舍人巖)」은 남조천(일명 운계천)변에 병풍처럼 넓은 바위가 직벽을 이루며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두고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 그림과 같다고 찬양했을 정도로 그 경관이 특이하고 아름답다.
고려시대 경사와 역학에 능통했던 역동 우탁 선생이 정4품 벼슬인 사인(舍人) 재직 시 이곳에서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였던 임재광이 사인암이라 명명했다고 전하며, 암벽에는 우탁의 글이 남아 전한다. (출처:문화재청)

맑은 운계천을 따라 명명된 운선구곡 중 제7곡! 사인암.

푸르고 영롱한 옥빛 여울이 수백 척의 기암절벽을 안고 휘도는 곳. 수려한 절경을 간직한 덕분에 운선구곡(雲仙九曲)이라는 이름을 얻은 그곳에 단양팔경의 제5경에 속하는 사인암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로 재임한 임재광 선생은 단양 출신인 고려말 대학장 역동 우탁 서생이 사인 벼슬로 재직할 당시 이곳에서 머물렀다 하여 사인암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고 한다. 마치 해금강을 연상케 하는 사인암의 풍광은 그 어떤 뛰어난 예술가가 그와 같은 솜씨를 부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선을 압도한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암벽 위에 선연한 격자무늬, 마치 어깨 위 날개처럼 도드라진 노송의 어우러짐은 정적인 동시에 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보는 이의 가슴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최고의 화원이라 칭송받던 단원 김홍도도 사인암을 그리려 붓을 잡았다가 1년여를 고민했다고 하니 그 복잡미묘한 매력을 평범한 심미안으로 만끽할 수 있을까? (출처:단양군청)






卓爾弗群

뛰어난 것은 무리에 비할 바가 아니나
確乎不拔
확실하게 빼어나지도 못했도다
獨立不懼
홀로 서도 두려울 것 없고
遯世無憫
세상에 은둔하여 근심도 없노라

<암벽에는 역동 우탁의 글이 새겨져 있다.>

청련암(靑蓮庵.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고려 말 1373년(공민왕 22) 나옹선사가 창건하였다.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빈 절로 내려오던 것을 1710년(숙종 36) 인근 대흥사(大興寺)의 승려들이 중창하여 선실(禪室)을 세우고 청련암이라 하였으며, 1741년(영조 17) 장마 비로 떠내려가자 마을사람들의 시주를 얻어 1746년 중건하였다. 그 뒤 다시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54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련암 삼성각


"한 손에 막대잡고 또 한 손에 가시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白髮) 막대로 치려 터니
백발이 제 몬져 알고 즈럼길(지름길)로 왔더라 "

 

단양 청련암 목조보살좌상(丹陽 靑蓮庵 木造菩薩坐像.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리 산27 대강면 사인암리 산27)

단양 사인암 바로 옆에 있는 사찰인 청련암의 본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상이다. 이 불상은 원래 청련암이 단양군 황정리 산 28에 소재했었을 때 봉안했던 아미타삼존불의 하나로 대세지보살상이다. 1954년 청련암이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본존상은 없어졌고, 관음보살상은 제천 원각사로 그리고 대세지보살상은 이곳으로 봉안되었다 한다. 복장은 얼마 전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도난되어 없다고 한다.
불신과 보관 전면에 도틀거리는 금칠이 두텁게 되어 있어서 재질이나 상의 양식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최근에 이를 벗겨내고 새로 개금을 하게 되었으며, 금박을 벗겨낸 결과 속에 오래된 목불의 형태가 잘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무는 은행나무이고, 조각기법은 무릎 앞면만 붙이고 불신은 通造이며 머리도 한나무로 조각되었다.
높은 보관을 쓴 보살상으로 전체적인 모습은 불신에 비해 얼굴이 작은 편이다. 보관 안의 머리는 높게 보발을 묶고 일부는 어깨로 늘어뜨리고 있다. 옷은 조선시대 후기 불상의 일반적인 표현처럼 대의를 오른쪽 어깨만을 둥글게 가린 편단우견에 속에 편삼을 입고 있는 형상이다. 편삼자락이 대의에 낀 모습이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배 부분에 둥근 옷 주름이 옆으로 두 번 겹쳐 있는 형상인데, 충북지역의 목조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손은 아미타인으로 따로 만들어 끼었으며 몸에 비해 크게 조각되었다. 보관 역시 나무로 형상을 만들고 표면에 화염문과 운문, 새 등을 금속으로 조각하여 부착하였으나 다소 부식이 있다.
무릎 부분의 양감이 좋고 옷 주름선도 유려하며 불신의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양감이 잘 표현된 상이다. 뒷면의 네모난 선은 조성시 속을 파기위해 뚫었던 것이고 현재는 다시 접착되어 있다. 이 상의 조성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인근에 있는 제천 신륵사의 목조삼존불상(擁正 8년, 1730년 작)과 양식적으로 연관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18세기 전반 작으로 추정된다.
청련암의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비교적 큰 규모의 불상으로 제천 원각사의 목조관음보살상과 더불어 원 청련암의 아미타삼존상이었던 유래가 있는 상으로, 양식적으로도 같은 특징을 보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배 부분에 둥근 옷 주름이 옆으로 두 번 겹쳐 있는 점이 특징인데, 이와 같은 예는 제천 신륵사의 목조보살좌상(1730년)에서도 볼 수 있어서 양식적으로는 18세기 전반 충북지역에서 유행한 불상양식의 한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출처:문화재청)

단양 사인암(丹陽 舍人巖)이 있는 운계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