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의성

대곡사(大谷寺)

노촌魯村 2018. 8. 18. 09:14

대곡사(大谷寺.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봉정리 894))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
대곡사(大谷寺)는 고려 시대인 1368년(공민왕 17)에 인도 승려 지공(指空)과 왕사인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에는 태행산(太行山) 대국사(大國寺)라 하였고, 적조암을 비롯하여 9개의 암자가 있었다.

정유재란 때 대곡사와 암자의 대부분이 소실되어 적조암만 남았다.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대웅전을 중창하였고, 1623년(인조 1)에 향적전, 1650년(효종 1)에 범종각, 1656년에 명부전을 중창하였다. 그리고 1687년(숙종 13)에 태전(太顚)을 중건하면서 사찰의 이름을 비봉산 대곡사로 바꾸었다. 1856년(철종 7)에 정이조 화상이 53불전, 16나한전, 산신각, 요사채를 지방민에게 매각했으나 최인찬 스님이 53불전의 불상 중 13위를 찾아 대웅전에 봉안하였다. 1990년에 법의(法義)가 나한전, 산신각, 일주문을 신축하였다.

한편, 대곡사의 창건 연대에 대해서는 다른 주장도 있다. 1989년 11월에 발간된 한국 향토사 연구 전국 협의회의 논문집 제1집에 의하면, 대곡사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창건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백운 이규보의 대곡사 탐방 시(詩), 인도 승려 지공의 생존 연대, 대곡사 경내에 있는 다층 석탑의 양식, 경내의 텃밭에서 1960년에 발견된 통일 신라 후기 양식의 금동 불상 등을 들고 있다.

경내에는 전체 높이 173㎝의 탑신이 없는 다층 석탑인 청석탑(靑石塔)을 중심으로 탑의 뒷면에 대웅전, 전면에 범종각이 있고, 명부전과 요사채가 좌우에 있는 ‘口’형(形)의 가람 배치(伽藍配置)를 보인다. 그 밖에 나한전, 산신각, 종무소가 있으며, 부속 암자로 적조암, 진영각 등이 있다. 대웅전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막돌 쌓기로 기단을 세운 뒤 동향으로 건축하였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내부의 천장은 ‘정(井)’자 모습을 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금동 석가여래 삼존상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고, 그 좌우에는 소조(塑造)로 된 13위의 소형 여래 좌상이 놓여 있으며, 석가여래 삼존불과 후불탱화, 신중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양식이다. 범종각은 정면과 측면 모두 3칸의 2층 누각이며, 다포계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나한전(羅漢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전각이며, 산신각(山神閣)은 정면과 측면 각 1칸씩의 맞배지붕 전각이다. 1647년(인조 25)에 건립된 적조암은 원래는 지공 선사, 나옹 선사, 무학 대사를 함께 그린 영정 1점과 청허 서산 대사, 유정 사명 대사, 연화당의 영정 등 4점의 영정을 보관한 영정각이었으나 지금은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극락전과 산신각을 새로 조성하였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대곡사범종각(大谷寺梵鐘閣. 시도유형문화재 제161호. 경북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 (봉정리))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 인도승 지공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그 뒤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렸던 것을 다시 세운 절로 1978년 보수하였다. 범종각은 종을 봉안했던 곳인데 지금은 종이 없다.
앞면·옆면 모두 3칸 규모를 가진 2층 누각이며, 지붕은 겹처마의 팔작지붕이고,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앙서의 윗몸에 연꽃을 조각하여 조선 후기의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다. 또한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하나씩 놓은 반면 가운데 칸에는 공포를 배치하지 않은 점이 특이하다.
대웅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의 조각수법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며 대웅전보다 시대가 약간 떨어지는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추정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

의성대곡사다층석탑(義城大谷寺多層石塔. 문화재자료 제405호. 경북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 (봉정리))

대곡사의 대웅전 앞에 있는 다층석탑으로, 탑몸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靑石塔)이다.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절을 지었으며 처음에는 대국사라 이름하였다가 다시 대곡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 탑은 전체 높이가 173㎝로서, 상륜부는 없어졌으나 화강암으로 된 기단부와 점판암으로 된 탑신부는 약간의 손상을 입은 상태로 남아 있다. 땅에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기단부의 바닥돌은 사각의 돌로 되어 있고 그 위에 함께 기단부를 형성하는 하대석이나 중대석, 연화대좌, 상대석이 차례로 놓여져 있다.
탑신부는 현재 12층이 남아 있는데 각층은 몸돌은 없고 지붕돌(옥개석)만 쌓여 있는 상태이다. 각층의 지붕돌은 위로 갈수록 일정한 비율로 축소되어 있는데 6층과 7층은 체감비율이 급격히 줄어 들어 그 사이 한층의 지붕돌이 없어진 것 같아 원래는 13층을 이루었으리라 짐작된다.
대곡사 다층석탑은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보물 제518호)보다는 조금 늦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적어도 그 시기가 11세기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각층의 몸돌이 남아 있지 않고 지붕돌도 약간의 손상을 입었지만 12층까지의 지붕돌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고려 초기의 청석탑의 양식을 잘 보여 준다. (출처 : 문화재청) 

의성 대곡사 대웅전(義城 大谷寺 大雄殿. 보물 제1831호.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894)

의성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 지공(指空)이 원나라와 고려를 다니면서 불법을 펼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절이라 전한다. 처음 세운 목적에 따라 대국사大國寺라 명명했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중창하면서 대곡사로 바꾸었다. 창건 시기에 대해서는 1960년 앞 텃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후기 조성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상과 고려 초기의 다층석탑 그리고 이규보의 ‘대곡사 탐방시구(探訪詩句)’ 등의 자료로 미루어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세월이 오래되고 유구 등이 확인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의성 대곡사의 중심 불전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양식으로 1687년(숙종 13)에 태전선사가(太顚禪師)가 다시 중건하였다. 내부의 불단이 후열 평주선보다 뒤쪽에 위치했는데 이런 불단의 위치는 평면구성이 같은 다포계 팔작 불전에서는 18세기 이후 점차 줄어드는 모습으로 중건(17세기 후반) 당시의 건축사적 경향을 읽게 한다.
또한 후면 서측 협칸에는 영쌍창구조(창호 중간에 기둥을 두어 창문이 두 개처럼 보이게 한 창)가 있고 좌․우측면과 배면의 벽체에 중인방 없이 세로 벽선을 세웠으며 정면과 양측면의 기둥뿌리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여지는 큰 구멍이 있는데, 불전 정면에 마루를 둔 예나 영쌍창과 세로벽선은 18세기 이전 건물에서 주로 찾아 볼 수 있는 고식이다.
다포계 형식의 포작은 내외 3출목이며 건물의 전후 좌우면 기둥간격을 동일하게 하고, 주간에 두구씩의 공포를 배치하여 지붕하중을 안정되게 받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건축공간계획과 구조계획이 함께 설계된 세심하고 능숙한 기법을 볼 수 있다. 기둥이나 보 등의 구조부재는 섬세한 가공이나 미적 의장성은 최소화하고, 가구의 구조형식은 간결하면서 명확하게 결구되어 있다.
대곡사 대웅전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공포의 동일한 내외출목수, 배면 개구부의 창호구성(영쌍창), 불단의 배치, 건물 정면의 외부 마루 흔적 등은 중건 당시의 시기적 경향을 읽을 수 있는 모습으로 의성 지역의 불교사찰이 부흥하기 시작한 시대의 양식 변화를 살펴 볼 수 있는 자료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출처 : 문화재청)

대곡사 대웅전 처마 장식

대곡사 대웅전 처마 장식

의성대곡사명부전(義城大谷寺冥府殿. 문화재자료 제439호. 경북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 (봉정리))

대곡사는 고려 공민왕 17년(1368)에 지공선사와 나웅선사에 의해 창건 되었으나 임진왜란시 화재로 소실되어 조선 선조 38년(1602)에 탄우대사가 중창하였고 숙종 13년(1687)에 중건하였다. 대곡사 명부전은 건립 당시부터 명부전으로 건립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창호구성수법 치목방법 등 건축 수법에서 17~8세기의 형식들을 유지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의성 대곡사 지장보살도(義城 大谷寺 地藏菩薩圖. 시도유형문화재 제426호)

의성 대곡사에 소장되어 있는 이 지장보살도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배치하고 육광보살과 시왕, 제석·범천, 동자, 사천왕 등 여러 眷屬을 좌우에 배치한 형식이다. 화면의 전체적인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하단 부분이 일부  손상되어 있다.
육광보살, 사천왕 등의 도상이 추가되어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조선 후기 지장보살도에 사천왕이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작품 중의 하나로서 의미가 크다.(출처 : 문화재청)

의성 대곡사 삼화상 · 조사진영(義城 大谷寺 三和尙 · 祖師 眞影. 시도유형문화재 제427호)

三和尙 眞影」과 「淸虛堂 休靜 眞影」, 「泗溟堂 惟政 眞影」, 「抱虛堂 曇秀 眞影」 등 4폭의 眞影은 현재 의성 대곡사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삼화상 진영, 청허당 진영, 사명당 진영 등은 1782년에 같은 畵員에 의해 동 시기에 제작 되었고 특징적인 도상의 畵風이 비슷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나옹·무학·지공의 삼화상은 한 폭에 그린 도상으로는 현존 진영 중 가장 이른 예에 속한다.

三和尙 眞影

泗溟堂 惟政 眞影淸虛堂 休靜 眞影抱虛堂 曇秀 眞影

의성 대곡사 적조암(義城大谷寺寂照庵)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봉정리 비봉산에 위치한 대곡사에서 산 정상부로 조금 떨어진 적조암에 있다. 소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봉정리 894)이다.

클릭하시면 원본 사진 크기가 나타납니다. 

극락전

극락전 내부

 산신각(山神閣)

 산신각(山神閣)의 내부(나반존자.산신.치성광여래을 모셨다)

산령각에서 본 적조암

대곡사 적조암 구포루(大谷寺寂照庵九苞樓.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26호)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이나 그 유래는 17세기까지 소급되고 18세기에도 중창한 적이 있다.
대곡사는 전성기에 9암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적조암만 남아 있다. 적조암 구포루는 인법당으로 1847년 창건하였는데 누마루를 가진 매우 독특한 양식의 건물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이 건물은 대곡사의 입장에서나 건축적인 가치를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건물의 일부가 파손되어 원래의 모습을 잃었고, 법당이 방으로 개조되고 방 뒤편에 벽장을 신설하는 등 일부 부분에서 변형이 있다.
구포루는 정면4칸, 측면4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로 평면은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뒤쪽은 온돌방을 설치하고 전면으로는 정면2칸, 측면2칸 규모의 마루를 돌출시켰는데, 마루의 하부에는 하층주를 세워 상부의 마루는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고, 누마루 주위에는 계자각을 세운 헌함을 둘렀으며, 처마의 주위에는 활주를 세우고, 가구는 오량가의 이익공으로 창방과 장혀사이 초각한 사자모양의 화반을 설치하였으며 내부에 다락방을 설치하는 등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건축물이다.(출처 : 대곡사)

적조암 오르는 계단 위의 백구白狗(두 마리가 교대로 보초를 서는듯 ... ?)

적조암 오르는 계단 위의 백구白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