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김천

증산면사무소. 유성리 소나무. 쌍계사지雙磎寺址 및 증산초교甑山初校

노촌魯村 2018. 8. 26. 17:13


증산면(甑山面) : 조선시대는 성주목(군)에 속해 있었으며 관내에 있는 시루봉(甑峰)의 이름을 따서 증산면이라 칭하였고 37개동을 관할하였다. 1895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주군 외증산면과 성주군 내증산면으로 나누어졌다.
그 뒤 1906년에 내증산면은 지례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에 다시 외증산면도 지례면에 병합 되었다. 한편 내증산면은 증산면이라 개칭하여 김천군에 편입됨과 동시에 29개동을 부항· 동안·황정·평촌·유성·금곡·황정·수도·장전·황점의 10개동으로 통합 개편되었다.
1949년에 김천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금릉군 관내에 들었다. 1973년 유성동을 1, 2동으로 분할하여 11개동이 되었다.
김천시 남단에 위치하며 경북·경남의 도계를 이루며 김천시청에서 면 소재지인 옥동까지는 32km거리이다. 동은 성주군, 서는 대덕면, 남은 경남 거창군, 북은 지례면과 접경하고 있다. 면 주위가 수도산(1,317m)·단지봉(1321m)·목통령·형제봉(1022m)·삼방산 등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산의 면적이 전체 넓이의 86.5%를 차지하는 김천시 제일의 산간오지 이다. 북의 황항 및 부항리에서 발원된 남암천과 서의 수도산에서 발원한 대가천, 그리고 남의 황점 및 장전리에서 비롯된 목통천이 흘러 면 소재지 아래에서 합수하여 옥류천을 이루어 성주군 방면 동쪽으로 흐르고 이들 가천 양안에 좁은 들이 이루어져 있다.
무주∼대구간을 연결하는 30번 국도가 면을 동서로 지나고, 지례면 속수 앞 3번 국도에서 갈라져 나온 903번 지방도가 면을 남북으로 달리어 장전리에 이르고 이 두 도로가 면소재지에서 교차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불령산(수도산)에 천년 고찰인 청암사와 수도암이 있고 경치가 뛰어난 골짜기가 많아 관광지로서의 전망이 밝은 편이며, 면 전체가 고지대인 관계로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길고 추운 편이다.
증산의 증(甑)은 시루가마를 뜻하는 것으로 부항의 부(釜)와 무관하지가 않다. 그것은 부산- 대증(大甑)에서 가마와 시루가 같은 개념으로 통용됨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본디 성주쪽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 계열로 보아 그렇다는 줄거리다.(전문 김천시사(1999년 12월, 김천시)발췌)



김천 유성리 소나무(金泉柳城里소나무)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에 있는 수령 약 250년 된 2그루와 200년 된 1그루의 보호수.

김천 유성리 소나무는 3그루 중 1그루는 처진 형태를 띠고 있으며, 2그루는 일반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수령 250년의 한 그루는 높이 12m, 뿌리 부분 둘레 1.9m, 가슴높이 둘레 1.9m, 지하고(枝下高)[가지가 없는 줄기 부분의 높이] 7m이다. 다른 한 그루는 높이 12m, 뿌리 부분 둘레 2.7m, 가슴높이 둘레 2.3m, 지하고 5.5m이다. 수령 200년의 나무는 높이 15m, 뿌리 부분 둘레 2m, 가슴높이 둘레 1.8m, 지하고 7m이다.

현재 소나무가 있는 주변은 신라 불교를 전래한 도선국사, 아도화상이 창건한 쌍계사(雙溪寺) 터이다. 1951년 7월 14일 북한군의 방화로 쌍계사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 여러 개의 초석과 소나무 세 그루가 천 년 세월의 터를 지키고 있다.

김천 유성리 소나무 가운데 2그루는 수령이 오래되고 수형이 수려하며 껍질이 거북등과 같은 형태를 보여 학술적 가치가 높아 2010년 4월 1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67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수간 내 일부와 바깥쪽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 증산면사무소가 있는 곳에 자리하여 항상 개방되어 있다. 관리는 청암사에서 하고 있으며, 관리 면적은 465㎡이다. 쌍계사 터가 있던 앞 계곡은 한강 정구(鄭逑)가 증산면 일대를 휘감아 흐르는 대가천을 두고 무흘구곡이라 붙인 구곡 가운데 6곡인 옥류동이다. 여름철에 많은 피서객이 옥류동 일대를 찾고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유성리 쌍계사지(柳城里 雙溪寺址. 경북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282-19)

신라 시대 사찰로 도선국사의 창건으로 전해져 오지만 정확하지 않고 6·25전쟁 시 방화(1951.7.14)로 소실되었다. 현재 금당지로 추측되는 축대와 주초석, 연화대석 등이 남아 있다.




쌍계사 부도(雙溪寺址浮屠.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282-19)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쌍계사지에 있는 조선 시대 부도. 증산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청암사 방면으로 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보주(寶珠)를 가진 석종형(石鐘形) 부도로서 방형의 지대석 위에 놓여 있다. 지대석의 중앙에는 21엽의 연화(蓮花)를 양각시켜 부도(浮屠)의 몸체를 받치고 있으며 네 모서리에 5개 입의 꽃무늬를 장식하고 있다. 부도 상부에는 높이 26.5㎝의 보주를 가지고 있으며 그 아래에 1단의 보륜(寶輪)[탑 위의 노반 위에 있는 높은 기둥에 아홉 개의 바퀴 모양의 테로 된 장식]이 있고 다시 그 아래쪽에 10엽의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지대석의 높이는 20㎝, 길이 173㎝이며 부도의 총 높이는 142㎝, 직경 104㎝이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증산면이 예전에는 성주 소속이라는 흔적(星州 雙磎寺 大功德嘉善大夫....)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은 조선말까지 성주군의 일부였으나 1906·1914년 두 차례에 걸쳐 금릉군에 편입된다. 1995년 김천시와 금릉군의 통합으로 김천시 증산면이 됐다.

쌍계사雙磎寺 배례석(현재 청암사 보광전 앞에 있음)

청암사 보광전

증산초등학교

증산초등학교 개교60주년 기념탑


길손이여

가든 발길 멈추고

이 돌덩이 어루만져 보거든

또 이 돌덩이 갈아 만든

그 사연이 궁금하거든

전해다오

잘 살지도 못하는

많은 동문들이

우리 모교 예순 돌 기념사업으로

먼 후일 후배들에게

선배들의 넋 어린

증표로 삼고자

정성쏟아 세웠노라고 ...




증산초등학교 화단에 곱게 핀 상사화



행한 이태희선생님 셀카 三昧 중 ...

유성리(柳城里)

조선시대에는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옥동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다. 1906년에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옥동·유성 ·지소를 통합하여 유성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에 들게 되었다. 1973년 유성, 지소가 분동해 나가고 옥동이 유성 1리가 되었다. 
김천도심에서 32km 거리인 면소재지 마을로, 마을 뒤에 증산면을 상징하는 시루봉(증산)이 솟아 있다. 수도산과 황항리에서 다르게 발원된 대가천과 남암천이 마을에서 합류하여 옥류천을 이루어 동으로 흐르고 주위의 들이 넓다. 동은 유성 2, 서는 평촌리, 남은 금곡리, 북은 황정리와 접경하고 있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그 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옥동·옥류동(玉流洞백천강·백천구(白川)  : 이곳은 증산면 사무소가 있는 곳으로서 매월 2·7일로 5일장이 서는 곳이다. 옛날에는 쌍계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었는데 이 사찰이 쇠퇴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6·25 때 공비로 말미암아 이 사찰이 완전 소실되자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되고 이곳을 흐르는 맑은 물과 돌이 아름답다고 하여 백천구라 했다. 광해군 때 판서 정술선생이 놀러 왔다가 냇물이 바위에 부딪쳐서 흘러가는 것이 마치 옥이 굴러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옥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버들밭·원유성·유성(柳城) : 옛날 이곳은 냇가에 버들 숲이 무성하였는데 350여 년 전에 황씨라는 분이 마을에 정착하여 살면 서부터 마을이 형성되고 차츰 버들을 베어내고 그 곳을 농토로 개간하여 버들밭이라고 불리다가 행정 동명이 정해지면서 유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소(紙所지촌 : 유성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은 앞냇물이 맑고 수량이 많아 종이를 만들기에 알맞은 곳이어서 한지를 생산하게 되어 청암사·쌍계사·수도사 등에 제공하다가 이 마을의 한지가 질이 좋으므로 조정에 바쳤다고 전해진다. 이에 연유하여 마을 이름을 지촌·지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근래까지도 한지 생산을 계승하고 있었다.(전문 김천시사(199912, 김천시)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