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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내장사(內藏寺)

노촌魯村 2018. 10. 6. 21:13


내장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백제 제30대 무왕(600-640)37년인 서기 636년(백제멸망 660년24년 전)에 당시 도승이신 영은조사께서 지금의 절 입구 부도전 일대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웅전등 50여동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 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098(고려조 숙종3년) 행안선사께서 전각당우를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557년(조선조제13대 명종12년) 희묵대사가 법당과 요사를,1639년(인조17년) 부용대사가 사우를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했으며,1779년(정조3년) 영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다. 

1923년 백학명 선사가 사세를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등을 신.개축하여 현 위치에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1951년1월12일 소실된 것을 마지막으로 창건이래 5화 7건으로 역사가 있다. 1957년 주지 야은스님께서 요사,1958년에 현 대웅전을 중건하였다.1964년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과 탱화를 조성 봉안 하였다. 

그 후 1974년 국립공원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왕문이 신축되었다.조선조 성종때 석학 성임(1421-1484)은 정혜루기에서 영은사는 고려말엽 지엄선사의 개산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한 뒤, 정혜루는 당시 영은사의 문루로 1467년(세조12년)에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간으로 그 규모나 형태가 장엄무비하다고 전하고 있다. 

최근 내장사는 향적원과 정혜원, 요사등을 신축하고 1994년 10월에는 사리탑을 건립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원래 내장산에는 명찰 영은사가 있었으니 영은사는 지금의 부도전 위치에 있었다.(출처 : 내장사)



일주문과 천왕문 사이의 단풍나무 

 

천왕문



 

정혜루定慧樓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에서 본 내장산 서래봉

극락전極樂殿



관음전觀音殿


관세음보살상

내장사 조선동종(內藏寺朝鮮銅鐘. 시도유형문화재 제49호. 전북 정읍시 내장사)

총 높이 80㎝, 몸체 길이 60㎝, 입 지름 50㎝로, 소형이나 명문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입 주변에는 한개의 덩굴무늬 띠를 둘렀으며, 어깨 부위에는 덩굴무늬 띠와 물결무늬 띠가 잇대어 배열되어 있다. 어깨 아래로는 2줄로 만든 작은 원 안에 범자를 도들새김 하였으며, 24개의 원을 배열하여 문양을 만들었다. 몸체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유곽을 4개 두고 안에는 9개의 유두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유곽을 만든 띠는 덩굴무늬로 채웠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을 양각하였다. 몸체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장식한 듯한 문양이 있다.
이 동종은 내장사가 중건되자 전남 보림사에서 옮겨 왔는데, 일제시대 후기에 원적암에 은닉하였고, 한국전쟁 때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원형의 두광과 보관을 갖추고 합장한 보살입상 4구가 배치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양주(陽鑄)된 명문이 있어 주성 연대와 사찰명을 밝히고 있다.

명문에는 乾隆三十三年 戊子十月 日長興寶林寺明正庵中鐘鑄 成尹光衡 大禪師光學 化主德周 別座來應 施主秩 大施主尹光衡 趙漢寶爲化父母 趙仁九 梁氏兩主 林奉□ 妻安氏(건륭33년 무자10월 일장흥보림사명정암중종주 성윤광형 대선사광학 화주덕주 별좌내응 시주질 대시주윤광형 조한보위화부모 조인구 양씨양주 임봉□ 처안씨)로 기록되어 있는데부모를 위해 주성하여 장흥 보림사 명정암에 공양한 동종이며건륭 33년 무자는 영조 44(1768)으로 조선 후기 동종의 양식을 갖고 있다.

 




명부전冥府殿





삼성각

칠성탱화

산신탱화

나반존자






정혜루 앞 연못

 

내장산 굴거리나무군락 (內藏山 굴거리나무群落. 천연기념물 제91호. 전북 정읍시 회룡길 28(내장동)))

굴거리나무는 우리나라 및 중국,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지대와 제주도, 전라도의 내장산·백운산 등 따뜻한 지방에서 자란다. 한자어로는 교양목(交讓木)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새잎이 난 뒤에 지난해의 잎이 떨어져 나간다는, 즉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는 뜻이다. 정원수로 좋으며 가로수로도 유명하다.
내장산의 굴거리나무 군락은 내장사라는 절 앞에 있는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곳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큰 굴거리나무는 보기가 힘들며, 굴거리나무의 잎은 약으로 쓰이는 만병초라는 나무와 닮아서 이곳 사람들은 만병초라고도 부른다. 
내장산의 굴거리나무 군락은 굴거리나무가 자생하는 북쪽 한계지역이라는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굴거리나무의 작은 가지(小枝)는 굵고 녹색이지만 어린 것은 붉은 빛이 돌며 털이 없다.
이 나무는 대극과(科)에 속하는 난대성(暖帶性) 상록활엽수(常綠闊葉樹)로 높이는 10m나 된다.
잎은 가지 끝에 모여서 서로 더불어 살며(互生) 홍색(紅色), 담홍색(淡紅色) 또는 녹색(綠色)의 긴 잎자루(葉柄)가 있다.
꽃은 일가화(一家花)로서 녹색이 돌며 꽃받침과 꽃부리(花被)가 없고 길이는 2.5㎝의 액생총상화서(腋生總狀花序: 식물의 잎겨드랑이에서 싹이 나거나 꽃이 피며 긴 꽃대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끝까지 미치어 피는 꽃으로 싸리나무, 투구꽃, 꼬리풀, 냉초 등)에 달린다.
잎과 나무의 껍질(樹皮)은 삶아서 구충제로 사용한다.
내장산에는 군데군데 이 군락(群落: 떼지어 나 있는 것)이 있는데 5m 높이까지 자라며, 이 지역에서는 만병초(萬病草)라고 하여 신경통의 약제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내장산에서 선인봉 입구까지의 계곡(溪谷)에는 굴거리나무 군락이 있고, 또 선인봉에서 샘터 사이에는 가슴 높이 둘레 20㎝, 수고(樹高) 약 9m의 군락이 있고, 내장사에서 해발 300m의 전망대 사이에도 굴거리나무-참단풍의 군집(群集)과 신갈나무-졸참나무가 한 곳에 떼를 지어 모여(群集) 있다.
이 굴거리나무는 이 곳 이외에도 제주도를 비롯하여 남부지방의 여러 도서에도 자라고 있는데 내장산 군락은 내륙(內陸)에서의 분포상(分布上) 최북한지(最北限地)이므로 학술연구자원으로 주목되어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로 지정되었다.
국외에서도 일본 본주(日本 本州) 남부(南部)와 구주(九州)의 저산지대(低山地帶)에도 분포되어 한일난대지역(韓日暖帶地域)을 구별하는 표식수(標識樹)이기도 하다.

저는 굴거리나무입니다.
늘푸른 넓은 잎의 작은나무인 저의 모양새는 만병초와 비슷하며, 봄에는 황색의 작은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검푸른 열매도 맺습니다.
살 수 있는 환경은 15~25℃의 반 그늘을 좋아하고 건조한 곳을 싫어하며, 5~10℃에서 겨울을 지낸답니다.
주로 분포하는 곳은 제주도와 남부 해안지방이지만 제가 살 수 있는 북쪽의 한계선은 단풍의 명소인 이곳 내장산국립공원입니다.
저는 난대성 나무이면서도 전형적인 온대낙엽활엽수림지역인 이곳에서 집단 서식하는 희귀성을 인정받아 저의 자생지 360,993㎡(109,200평)가 1962년 천연기념물 제9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출처 : 정읍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