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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영주 금강사 터에서 만난 보물 : 2018.10/23 - 2019.2.24 국립대구박물관 특별 전시실

노촌魯村 2019. 1. 11. 19:42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에 위치한 금광리는 내성천이 'U'자 모양으로 굽이쳐 흐르는 곳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금광이라는 이름은 내성천의 물결이 모래와 같이 반짝이고 비단 같다고 하여 불리어진 것입니다.

이곳 내성천 일대에 영주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재)한국문물연구원에 의해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삼국시대 ~ 조선시대의 오랜 기간 조성된 생활, 생산, 사찰 유적 등 675기에 달하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이 일대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이 살면서 생활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고려시대 우물 터에서 출토된 광명대의 명문을 통해 '금강사剛寺'라는 사찰이 이곳에 존재했었다는 사실史實은 매우 가치있는 발굴성과리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사는 출토 유물을 볼 때 12세기 전반부터 13세기 전반까지 운영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금강사가 사라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몽고와 왜적의 침략이나 천재지변 같은 원인도 생각할 수 있으며 경제적, 정치적으로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하여 자연적으로 사러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영주를 비롯한 경상북도 북부지역에는 삼국시대부터 비교적 많은 불교유적과 유물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주 부석사浮石寺나 안동 봉정사鳳停寺(둘 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와 같은 유명한 사찰의 법등法燈은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금강사는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당시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을위로해주며 함께 존재했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금강사 터에서 출토된 광명대 등 고려시대에 제작된 출토품 34점을 전시합니다. 금광리는 영주댐의 건설로 수몰되어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지만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의 정보는 고려시대 지방사 연구에 있어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출처 : 국립대구박물관)

 

 

 

 

 

 

 

 

금광리 서쪽 구릉에서는 기와편이 발견되어 이곳에 고려시대 사찰이 있었다고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본격적인 발굴조사 결과 구릉 정상부에서 통일신라시대 유구와 소조탑편塑造塔片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래쪽 금강사 터에서도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소형 금동불 대좌가 발견되어 고려시대 이전 사찰 혹은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한 건물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강사는 구릉지에 조영되었기 때문에 높은 곳을 깎아 낮은 곳을 메우는 방식으로 축대를 조성하였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습니다. 내부에는 건물지 10곳과 우물 1곳, 보도, 계단, 배수로, 담장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물들은 대략 3시기로 나누어 조성되었습니다.

 

기는 창건기로 사찰의 기본적인 가람 배치가 이루어지는 시기입니다. 5기의 축대를 쌓아 4단의 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지 4. 6, 7호를 만들었습니다. 건물 배치는 불규칙적이며 중심구역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건물지 1호와 2호 사이에는 건물을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계단과 보도가 건물 중심에 조영된 것이라고 가정할 때 이곳에 중심구역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기는 부속 건물들이 추가되는 시기입니다. 1단에서는 축대를 좌우로 확장하여 대지를 넓게 조선한 뒤 건물지 1호와 2호를 조성하였습니다. 2단에서도 좌우로 확장하여 건물지 3호와 5호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4단에서는 건물지 8호를 추가하였습니다. 건물지 5호에서는 건물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땅의 신(地神)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묻은 공양물인 경자磬子(부처 앞에 예불을 드릴 때 흔드는 작은 종)와 경상鏡像이 출토되어 주목됩니다.

기는 12세기 후반에 발생한 화재 이후 폐사될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건물지 6, 7, 우물은 폐기되었습니다. 기에 만들어진 건물지 8호 동쪽 기단에 덧대어 건물지 9호를 설치하였으며 건물지 8호와 동일한 규모의 건물지 10호를 새롭게 조영하였습니다. 건물지 9호는 사찰의 중심구역 남북축 가깝게 위치하고 있어 사찰의 출입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금강사는 고려시대에 나타났다가 고려시대에 사라진 사찰입니다. 광명대 명문에 등장하는 안일호장安逸戶長(고려시대, 나이가만70세가되어퇴직한호장에게주던명예직벼슬) 우재부와 일품별장 보석, 그리고 이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이름을 알 수 없는 고려시대 사람들에 의해 관리. 운영되어 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출처 : 국립대구박물관)

 

 

 

 

 

 

 

 

 

 

 

소조탑편塑造塔片

 

 

 

청자 장고

청자 대접

청자 병

청자 병

청자 접시.  청자 접사.  청자 뚜껑.  청자 벼루

불상대좌

불상대좌

나무 주걱. 봉숭아 씨

 

철솥

대부완

향완

경상鏡像

거울

경자磬子(부처 앞에 예불을 드릴 때 흔드는 작은 종)

 

'卍만' 자명 기와

향로 뚜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