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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회암사지부도탑(檜岩寺址浮屠塔)

노촌魯村 2019. 4. 7. 00:30




회암사지부도탑(檜岩寺址浮屠塔. 시도유형문화재 제52호.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14-1번지)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이다. 회암사터의 가장 북쪽에 서 있는 이 부도는 그 주인공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보우 스님이나, 회암사 중창에 힘쓴 처안의 부도탑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상·중·하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아래받침돌에 구름에 휩싸인 말을 생동감 있게 조각하였고, 윗받침돌은 8부신장(八部神將)과 덩굴무늬로 장식한 후 그 윗면에 연꽃무늬를 둘렀다. 윗받침돌과 둥근 탑신의 몸돌사이에는 별도의 돌로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고, 처마는 느린 U자형을 이룬다. 꼭대기에는 여러 머리장식들이 포개져 있다.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작품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화려함이 느껴져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출처 : 문화재청)










회암사지(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임)

회암사의 창건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고려 명종4년(1174)에 금나라 사신이 회암사를 들렀다는 기록이 있어서 12세기 후반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회암사는 인도승 지공이 "삼산양수간(三山兩水間)에 가서 절을 세우면 나라와 법이 흥한다."라는 말에  따라 나옹이 고려 후기에 대대적인 불사(佛事)를 주도하여 사역(寺域)이 확장된 이후 조선전기까지 황실을 중심으로 많은 불사(佛事)가 이루어지면서 최대 규모의 사찰로서 크게 번창하였다.

현재 회암사지에는 회암사지 부도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2호)와 회암사지 맷돌(경기도 민속자료 제1호)이 있으며, 회암사지 위쪽에 새로 창건된 회암사에는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의 복원작과 회암사 무학대사 홍융탑(보물 제388호). 회암사 무학대사홍융탑 앞 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 회암사지 지공선사부도비(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5호)가 있어서 회암사의 역사를 말해준다.(출처 : 문화재 지킴이)

회암사지(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