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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慶州 狼山 磨崖菩薩三尊坐像)

노촌魯村 2020. 2. 8. 11:30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좌상(慶州 狼山 磨崖菩薩三尊坐像. 보물 제665호.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18-3번지)

경주 낭산 서쪽 기슭의 바위면에 삼존불(三尊佛)이 조각되어 있는데, 표면이 거칠고 균열이 심한 상태이다. 가운데에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갖춘 본존불이 있고, 양 옆으로 협시불이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양감있는 얼굴은 광대뼈가 튀어 나오고 살짝 미소를 띤 매우 독특한 모습이다. 본존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있고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고려 불화에서 보이는 지장 보살의 모습과 비슷하여 흥미롭다. 양 협시는 본존과 거리를 두고 있는데 몸에 갑옷을 입고 있다. 왼쪽 협시는 오른손에 검을 들었고, 오른쪽 협시는 두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데, 악귀를 몰아내는 신장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문무대왕의 화장터로 전해지는 능지탑(陵只塔)이 이곳과 가까이 있는 점과 조각수법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문화재청)

                      

현 중생사의 바로 옆 암반에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보살삼존상이 있는데, 오랜 풍화에 의해 바위 표면의 마모가 심하고 균열이 많은 상태이며, 지금은 전각 안에 모셔져 있다. 이 불상에 대해서 동경통지2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山西麓下 村家有大石하야 刻三像 橫埋하니 中披袈裟하되 右甲而持일하고 居左者埋土不可明也…』라 하여 당시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본존은 가사를 지녔으나 협시는 신장으로서 과거에는 좌협시가 토사에 매몰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애보살삼존좌상은 결가부좌를 한 본존상과 양옆의 협시불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존의 높이는 1.0m, 좌우 협시의 높이는 0.9m이다.

먼저 본존인 지장보살상은 결가부좌에 두광과 신광은 원형으로 음각되었다.

머리 부분의 두건은 넓고 길게 늘어져 어깨 부분을 덮었다. 법의는 통견으로 두 손의 자세는 불분명하여 법의로 덮은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군의를 묶은 띠 매듭이 보이며, 옷 주름은 두 무릎을 덮어 발이 들어나지 않는다.

양쪽의 협시불은 본존과 거리를 두고 있는데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것으로 보아 악귀를 몰아내는 신장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왼쪽 협시의 신장상은 암벽이 가로로 두 가닥이나 갈라져 파괴가 심한편이며, 머리는 고수머리이고 비교적 높은 코에 크고 긴 귀가 있다. 오른손에는 칼을 들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져 있다. 측면관의 얼굴 모습은 정확하게 표현되었고 갑옷에 나타난 여러 가지 특징적 모습은 팔부중상 등에서 확인되는 문양과 동일하다.

두발은 유희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오른쪽 협시의 신장상은 상태가 가장 양호한 편이며 조각 역시 뚜렷하게 남아있다. 자세는 좌측의 협시불과 동일하나 칼을 쥔 모습은 좌협시가 집고 있음에 반하여 오른쪽 협시는 오른손으로 쥐고서 전방을 향하고 있음이 다르다. 유희좌의 모습이나 기타 갑옷의 형태 역시 조상과 비슷하며 얼굴 모습이 뚜렷하여 그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이렇게 보살상과 신장상이 함께 조성되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유일한 것으로서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마애보살삼존좌상은 세부 표현이 많이 마멸되어 상의 명칭과 제작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얕게 부조된 평판적인 부드러운 신체, 풍만한 얼굴, 넓은 어깨에 비해 무릎 폭은 좁지만 안정된 자세 등은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출처 : 경주 석조문화재 모니터링 보고서 )


2020.2.7 촬영    


보호각 없을 때    

삼존좌상 중 중앙의 본존상(2020. 2. 7 촬영)



삼존좌상 중 좌협시상(향우) 2020. 2. 7 촬영


삼존좌상 중 좌협시상(향우) 전체

삼존좌상 중 우협시상(향좌) 2020. 2. 7 촬영


삼존좌상 중 우협시상(향좌) 상반신


 

중생사

중생사의 폐탑 석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