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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군위

화산산성(華山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

노촌魯村 2020. 10. 7. 08:51

       

                 화산산성(華山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 경북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산229-1번지 외 3필)

이 산성은 외침을 막기 위해 조선 숙종 35년(1709) 병마절도사 윤숙장군이 병영을 건설코자 4문의 기초공사를 시작하고 성벽축조를 위한 석재를 모으며 수구문을 축조하던 중 때마침 거듭되는 흉년과 질병이 만연되어 백성들에게 계속 부역을 시킬 수 없어 중지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북문과 수구문터는 축성을 시작하여 공사하던 옛 모습 그대로 흔적이 남아있어 조선시대 축성의 기법과 공사의 순차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북문터의 부분이 전체의 성터 가운데 가장 잘 남아 안팎의 아치문을 무사석과 부형무사석으로 만든 수법과 내외 겹축의 성벽을 내탁의 방법을 이용하려 하였던 모습을 보여준다. 수구문터는 조선중기 이후 유행한 이층수구로 축조하려던 모습이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출처 : 문화재청)

 

이 성은 조선시대 숙종 35년(1709)에 병마절도사 윤숙이 병영을 건설하고자 4문의 기초공사를 하고 나머지 홍예문을 짓고 혜휘, 두청 스님으로 하여금 군수물자를 비축해 두기 위한 군수사(軍需寺)를 짓게 하였다. 홍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거리 200m, 높이 4m, 폭 5m의 성을 구축하려 하였으나 전례 없는 심한 흉년으로 인하여 공사가 도중에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윤(윤숙이)공 마저 전라병사로 전출되고 난후 20년간 후임자가 없어 시작한 일이 헛되어 버렸다. 원래 이 공사는 윤공의 사재와 승려들의 시주로 시작되었으며 일체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 산성을 쌓기 위해 개발한 화산 정상의 옥정영원(玉井靈源)은 천연정수로서 하절기는 10도이고 동절기에는 얼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출처 :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 중, 135. ; 동해문화)

  

2020.11. 8 답사 촬영
2020.11. 8 답사 촬영
화산북문華山北門 : 성문 출입문 성벽에 새겨진 금석문
수구문(2020.11.8)

화산마을(화산산성.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산230)

해발 800m의 산정상에 고랭지 채소를 주산물로 살아가는 마을이다. 마을 아래쪽에는 화산산성이 있는데 조선 숙종 35년(1709)에 병마절도사 윤숙이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지은 산성으로 흥예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거리 200m, 높이 4m의 성벽을 구축하던 중 심한 흉년으로 산성을 완공을 하지 못한 채 남아있다.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주변 경관과 일출, 일몰이 장관이다.

               

군위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