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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의성

의성 관덕리 삼층 석탑(義城觀德里三層石塔)과 의성관덕동석조보살좌상(義城觀德洞石造菩薩坐像)

노촌魯村 2020. 10. 31. 04:21
                               

의성 관덕리 삼층 석탑(義城觀德里三層石塔. 보물 제188호.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889)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 1리 목촌 마을 뒷산 사자골(해발 160m)에 삼층 석탑과 석조 보살 좌상 등이 위치하고 있다. 목촌 마을에서 북쪽으로 목촌길을 따라 약 400m 정도 올라가면 좌측편으로 약간 넓은 밭이 있고, 그곳에 석탑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사운사(獅雲寺)라고 하나 근거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의성 관덕리 삼층 석탑은 높이가 365㎝이고, 지대석은 한 변의 너비가 181㎝ 정도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으로, 각 부분의 장식이 풍부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하나씩 새기고, 조각에 의해 나누어진 8곳에 비천상(飛天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에도 각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후,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오른쪽에는 천부상(天部像)을 배치하였다. 사천왕과 천부상은 모두 부처의 법을 보호하고 지키는 신으로 이들을 이렇게 복합적으로 표현한 것은 보기 드문 모습인데, 이는 통일신라 후기에 가져온 변화인 듯하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 몸돌의 4면에 보살상(菩薩像)을 돌아가며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과 2층은 4단, 3층은 3단으로 줄어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젖혀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없어지고 이를 받쳐주던 네모난 받침돌만 거꾸로 놓여 있는데, 이는 후대에 와서 흐트러진 것으로 보인다. 그 위로 얹혀있는 돌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원래 위층 기단 윗면의 네 귀퉁이 마다 암수 2마리씩 돌사자 네 마리가 있었으나 이 중 2마리(보물 제 202호, 의성 관덕동 석사자)만 남아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렇듯 동물을 등장시키는 경우는 경주분황사 모전석탑이 가장 앞서고 이후 통일신라 후기까지 그 양식이 줄곧 이어져 내려왔다.

탑에 장식적인 화려함을 더하게 되는 본격적인 시기인 9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웅장한 기상은 덜하나, 많은 조각을 새겨 놓아 화려하고 아름답다.

 

제1기단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하나씩 새기고, 조각에 의해 나누어진 8곳에 비천상(飛天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다.
제2기단 각 4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긴 후, 기둥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4천왕상(四天王像)을, 오른쪽에는 천부상(天部像)을 배치하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으며, 1층 몸돌의 4면에 보살상(菩薩像)을 돌아가며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과 2층은 4단, 3층은 3단으로 줄어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위로 젖혀 있다.
석사자(복원품) 없을 때의 모습
일제강점기의 사진
위층 기단 윗면의 네 귀퉁이 마다 암수 2마리씩 돌사자 네 마리가 있었으나 이 중 2마리(보물 제 202호, 의성 관덕동 석사자)만 남아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의성관덕동석조보살좌상(義城觀德洞石造菩薩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산85번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의 3층석탑과 함께 있는 불상으로 높이는 98㎝이다.

목 부분이 잘려나간 것을 올려 놓은 상태이며, 얼굴은 심하게 닳아서 코 부분만이 남아 있다. 눈과 입은 세부 확인이 어려워 얼굴의 인상을 살피기 어렵다. 가슴 앞에 있는 목걸이와 U자형의 장식, 팔찌가 있어 보살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갸름한 얼굴, 신체의 안정감, 부드러운 굴곡 등에서 8세기 신라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각 솜씨가 뛰어나 신라시대 불상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