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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노촌魯村 2022. 2. 8. 04:58

대구 달성 비슬산 용연사 적멸보궁에서 본 검정고무신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물음 :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나?

 

말씀 :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은 중생제도를 강조하면서 등장한 대승불교의 자리이타自理利他(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남을 위하여 불도를 닦는 일)의 정신 즉, 자신도 이롭게 하면서 타인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정신을 표현한 말입니다. 즉 보살이 위로는 자신을 위해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깨닫지 못한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보살菩薩의 원래적 표현인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의미로도 파악될 수 있습니다.

보살菩薩이란 본래 보리살타菩提薩陀  줄인 말인데, 보리살타는 인도의 옛말 보디삿트바बोधिसत्त्व bodhisattva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말입니다.

여기에서 보디Bodhi란 깨달음을 의미하고 삿트바sattva란 중생이란 뜻으로 상구보리 하화중생은 보살이 마땅히 해야 하는 자리이타행自利利他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히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피안에 도달하기 위해 큰 수레에 탄 대승과 작은 수레에 탄 소승의 차이점입니다.

작은 수레에 탄 소승불교에서는 위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나 아래로 중생제도는 게을리 합니다. 그러나 대승은 혼자 타는 것이 아닌 같이 타고 피안의 길로 가는 큰 수레이기 때문에 위로 보리를 구할 뿐 아니라 아래로 중생을 인도해 깨달음으로 가는 수레에 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법을 위로는 자신을 위해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제도를 위해 끊임없이 굴려야 합니다.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이 일치될 때 진정한 깨달음은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를 믿고 따르는 우리 불자들은 위로는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르침을 믿고 수행하고, 아래로는 우리 이웃의 불행과 고통을 함께 하면서 불도로 이끄는 것만이 진정한 불도수행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말해 사회 전체의 도덕적 정신적 각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출처 : 생활 속의 불교. 해동불교범음대학)

 

대구 달성 비슬산 용연사 적멸보궁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達城 龍淵寺 金剛戒壇.보물  제539호.대구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915)

계단(戒壇)은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를 수여하는 식장으로, 이 곳에서 승려의 득도식을 비롯한 여러 의식이 행하여 진다. 용연사 내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이 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임진왜란(1592)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의 부처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의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한다.
돌난간이 둘러진 구역 안에 마련된 계단은 널찍한 2단의 기단(基壇)위로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4천왕상(四天王像)을 1구씩 세워두고, 위층 기단은 4면에 8부신상(八部神像)을 돋을새김하였는데, 뛰어난 조각솜씨는 아니지만 섬세하고 균형감이 있어 단조로운 구조에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조선시대에 유행한 양식을 보이고 있는 탑신은 별다른 꾸밈을 하지 않은 채 꼭대기에 큼직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두었다.
절 안에 세워져 있는 석가여래비에는, 석가의 사리를 모시고 이 계단을 쌓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을 통해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계단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구조가 섬세하고 조각기법이 예리하며, 특히 17세기 초에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당시의 석조건축과 조각을 연구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계단(戒壇)이란 수계의식, 득도식 등을 비롯한 여러 의식이 행해지는 신성한 곳으로 금강계단이라고도 한다. 용연사 내의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이 계단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두고 있으며, 계단의 앞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전각을 설치하였다. 통상 적멸보궁은 일반적인 전(殿)이나 각(閣)보다 법당으로서의 격이 높은데, 내부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으며 법당 바깥에 설치한 계단이나 사리탑에 모셔진 진신사리를 예배의 대상으로 한다.
이곳에 봉안된 사리는 신라 선덕여왕(632-647) 때의 고승인 자장법사가 중국에서 구법(求法)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져와 두 함(函)에 넣어 통도사에 봉안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1592) 때 통도사의 사리탑이 파괴되어 사리를 도난당하였다. 그 후 사명대사에 의해 다시 수습되고, 또 서산대사의 명에 따라 한 함은 태백산 보현사에, 한 함은 통도사에 안치토록 하였다. 그러나 전란과 사명대사의 입적으로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고 치악산 각림사에 일시 봉안하였으나 현종 14년(1673) 5월 5일 이곳 용연사에 탑을 건조하고 봉안하게 된 것이다.
돌난간이 둘러진 구역 안에 마련된 계단은 널찍한 방형의 이중기단 위로 종모양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상층기단의 각 면에는 팔부신상(八部神像)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여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수호하게 하였으며, 하층기단에는 네 모서리마다 사천왕상(四天王像)을 1구씩 배치하였다. 이들 팔부신상과 사천왕상은 예리한 조각기법은 아니지만 섬세하고 균형을 이루어 단조로운 사리탑에 구조적인 아름다움을 부가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석조 예술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본보기가 되고 있다. 다만 도난의 우려가 있어 사천왕상 4구는 별도 보관 중이고 현재 현장에는 모조품이 배치되어 있다. 계단 주위를 두르는 석조 난간은 1934년에 세워진 것이다.
한편 용연사와 같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사찰은 여러 곳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643년 신라의 자장법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석가모니의 사리(舍利)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경남 양산 통도사,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이 이에 해당된다.(달성군청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