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병영유적(慶山 兵營遺蹟. 사적. 경북 경산시 압량면 압량리 179번지)
김유신이 압량주 군주로 있을 당시 군사 훈련장이었다고 전해오는 유적이다. 압량리, 내리, 선화리, 두룩산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유적은 서북쪽의 구릉지대에 높은 대를 쌓은 고대식 광장과 동남쪽에는 무덤처럼 흙을 쌓아올려 높은 대를 만든 토축 고대가 연결되어 있다. 고대식 광장은 거의 원형이며 평탄한 넓은 장소를 광장으로 하고있다. 광장은 병사들이 무술을 익히고 심신을 연마하던 장소로 보이며 토축 고대는 장군의 지휘장소로 보인다.
자연구릉상에 흙을 쌓아올려서 마치 성처럼 보이지만 성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작으며, 윗면이 평탄한 광장으로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군사훈련장으로 보여진다. 다만, 토성을 훈련장으로 이용하기 위해 고쳐 쌓았을 가능성도 있다.(출처 : 문화재청)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과 진량읍 일원에 있는 삼국 시대 군사 훈련장.
경산 병영유적은 김유신(金庾信)[595~673]이 압량주군주(押梁州軍主)로 있을 때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였다고 전하는 유적이다.
김유신이 압량주군주로 임명될 무렵 신라는 백제의 공격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642년(선덕여왕 11) 백제의 의자왕이 신라를 공격하여 40여 개의 성을 빼앗았다. 특히 대야성[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을 백제군이 차지한 것은 신라 입장에서 커다란 타격이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외교로 극복하기 위해 김춘추(金春秋)[603~661]가 고구려로가 연개소문(淵蓋蘇文)[?~665]을 만났으나 성과가 없었다.
한반도에서 고립되어 가던 신라는 수도 경주를 지키기 위해 김유신을 압량주군주로 삼았다. 압량주는 현재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 일대로, 경주를 방어하는 마지노선이었다.
김유신은 이곳에서 군사를 훈련하며 백제군으로부터 수도를 보호하고자 하였다.
경산 병영유적은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읍과 진량읍 일대에 있다.
오목천 주변의 구릉 위에 총 3개의 연병장이 자리하고 있다. 연병장 간의 거리는 약 1~3㎞이다.
제1연병장은 압량읍 압량리에 있는데, 압량벌을 조망할 수 있는 야트막한 구릉 선단부에 자리한다.
제2연병장은 압량읍 내리에 있다.
제3연병장은 진량읍 선화리에 있으며, 제1연병장과 마찬가지로 압량벌을 조망할 수 있는 야트막한 구릉 선단부에 자리하고 있다.
경산 병영유적은 총 3개의 연병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연병장은 얕은 구릉 위에 7m 높이로 흙을 쌓고, 윗면을 평평하게 하여 원형 광장을 조성하였다. 둘레는 약 300m이다. 광장의 동남쪽에 높이 10m의 토루가 있다.
제2연병장은 구릉 자연면에 약간의 토축을 하고, 지름 80m, 둘레 270m의 광장을 마련하였다. 동남쪽에 높이 15m가량의 토루를 쌓았으나 현재는 크게 훼손되었다.
제3연병장은 얕은 구릉 선단부에 자리한다. 구릉 말단부에 10m 높이의 토축 원형 광장[지름 80m]을 구축하고, 원형 광장 북쪽에 치우쳐 높이 2m, 윗면 지름 13m의 토루를 쌓았다.
경산 병영유적은 경산 지역이 신라 시대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는 점을 실증해 주는 유적으로 가치가 있다. 특히 김유신이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하며 삼국 통일의 초석을 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광장의 동남쪽에 높이 10m의 토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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