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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주

흑석사마애삼존불상(黑石寺磨崖三尊佛像)과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榮州黑石寺石造如來坐像)

노촌魯村 2023. 11. 25. 02:28

흑석사(黑石寺.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석포리 1379])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 흑석사(黑石寺)는 옛 흑석사지(黑石寺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해방 후 사찰을 조성하면서 흑석사지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다.

옛 흑석사를 알려주는 유구(遺構)는 경내에 남아있는 석조물이다. 흑석사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흑석사’라는 사찰 명칭은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첫째, 흑석사 부근 바위 빛깔이 대개 검은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둘째, 흑석사 동쪽으로 600m쯤 내려가면 ‘흑석’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흑석마을 서남쪽에 거대한 검은 바위가 있어 사찰 이름을 ‘흑석사’라 했다고 한다.

흑석사의 건립 경위는 명확하지 않지만, 의상이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흑석사는 창건 이후 고려시대까지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 흑석사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한편,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지금은 폐사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흑석사는 18세기 말경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흑석사는 해방 이후 승려 김상호(金祥鎬)가 소백산 초암사(草庵寺)의 목재를 옮겨와 중창한 것이라 한다.

1950년 6.25전쟁을 피하여 정암산 법천사(法泉寺)의 아미타여래좌상을 흑석사로 옮겨와 봉안하였다. 1964년에 범종각을 세웠다.

현재의 주지 기연은 1986년에 부임하였고, 1999년 극락전 중창, 2010년 보궁 건립, 2012년 승방·심검당·종무소·일주문 등을 건립하였다.

흑석사는 처음에 대한불교태고종 소속이었으나, 주지 김상호가 입적한 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 되었다.

흑석사의 가람 구조는 극락전, 보궁, 승방, 심검당, 환희전, 종무소,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구조로 국보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주불로 하는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는데, 삼존불상은 화려한 닫집 속에서 다시 유리관을 쓰고 있다.

극락전 앞에는 불상 대좌와 석탑 부재를 모아 탑 모양으로 쌓아 놓았다. 상대석은 결실되고 중대석과 하대석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중대석 위에는 석탑 탑신 하나와 옥개석 2개, 파손된 보주를 상륜부에 올려놓았다.

보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구조로 당호와 편액이 없다. 보궁 안에는 불상이 없고 건물 뒤쪽 벽면에 삼존불상을 그려 놓았다.

보궁 뒤쪽 보호각 안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흑석사 마애삼존불상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 보물인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보호각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앞면과 측면 일부가 개방된 형태이다.

마애삼존불상이 있는 보호각 뒤쪽에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법륜을 든 석조여래좌상과 좌우에 신장과 산신을 조성해 놓았다.

극락전 옆쪽 뒤편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승방이 있는데, 주지가 거처하는 처소로 당호와 편액은 없다.

극락전 뒤쪽 자연석 바위에 시멘트로 작은 토굴을 만들어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여 환희전이라 하였다.

환희전 바로 위에는 돌로 호랑이상을 조각하여 세워 놓았다.

극락전 아래에는 심검당과 종무소가 멀리 떨어져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역시 당호와 편액이 없다.

일주문 또한 현재 편액이 없다. 또 한 단 아래에는 식당 겸 요사가 있다. 요사 오른쪽 숲에는 콘크리트로 된 2층 건물이 있는데, 주지였던 김상호가 초창기에 거처하던 곳이라고 하며, 현재는 수장고로 사용하고 있다.

흑석사에는 국보 1점, 보물 1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이 소장되어 있다.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국보 제282호]은 1458년(세조 4)에 세조의 명으로 조성된 불상인데, 1990년대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안에서 복장유물들이 나와,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흑석사에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유물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 구조 보호각에 봉안하였다.

원래 흑석사 부근에 매몰되었던 것을 발굴하여 봉안하였는데, 발굴 당시 마모가 심하였으나 현재는 석회로 보완하여 놓았다. 흑석사 마애삼존불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은 자연 상태 바위에 새긴 것으로, 중앙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존불 모두 입상이지만 본존불의 가슴 아랫부분과 협시보살의 목 부분 아래를 새겨 넣지 않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흑석사마애삼존불상(黑石寺磨崖三尊佛像.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석포리 1379])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의 자연암벽에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을 새긴 마애삼존불이다. 본존불은 가슴 이하를, 협시보살은 목부분 이하를 새기지 않은 특이한 모습이다.

본존불은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뚜렷하다. 귀는 길게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있다. 양 어깨에 걸친 옷은 주름이 마모되어 세부 표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삼면관을 쓰고 있는 좌우 협시보살은 모두 머리광배를 지니고 있는데, 좌측에 있는 협시보살의 얼굴이 더 넓게 표현되었다.(출처 : 문화재청)

신체 일부분만 새겨져 있지만 원형이 대체로 잘 유지되어 있는 작품으로, 신라말 또는 고려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흑석사 경내에 있는 고려 초기 마애불상. 흑석사마애삼존불상(黑石寺磨崖三尊佛像)은 흑석사 경내의 보호각에 봉안된 고려 초기 마애불상이다. 보호각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 구조이다.

높은 석축 위에 기둥을 좌·우에 각각 3개씩 세우고 좌·우 뒤쪽으로 2개의 기둥 사이는 나무판으로 막고 나머지는 모두 개방되어 있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은 자연 상태의 바위에 새긴 것으로, 중앙의 본존불과 좌우 협시보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 앞에는 보물 제681호인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의 크기는 바위의 총 높이 570㎝, 바위 너비 320㎝, 본존 높이 310㎝, 양쪽 협시 높이 270㎝이다.

가슴 부분 위로는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아랫부분은 마멸된 상태이며,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을 그 앞에 안치하기 위하여 시멘트로 단을 설치해서 묻어버렸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의 큼직한 육계에 머리는 소발이며, 두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눈은 내리뜨고, 코는 비교적 작으며, 입은 일자로 다물고 있는 형태이다.

두 어깨는 추어올린 듯하며, 목에는 삼도가 희미하다.

가슴에서 양편 보살의 턱부위에 걸쳐 가로 틈이 있다.

손 모양과 옷 주름은 분명치 않으며, 그 아래로는 조각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

둥근 두광의 윤곽이 보인다. 옷은 통견인 듯하나 분명하지 않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 좌우 협시보살은 본존 뒤에 서 있으며 모두 둥근 두광이 있는데, 삼면관을 쓰고 있다.

눈은 가늘며 콧날이 서고 두 귀가 길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은 모두 입상이지만 본존불의 가슴 아랫부분과 협시보살의 목 부분 아래를 새겨 넣지 않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독특한 표현 양식으로 시대 추정이 어렵지만 대체로 고려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은 1998년 8월 3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은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다. 흑석사마애삼존불상의 소박하며 아름답고 우아한 선 표현 등에서 고려 초기 마애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榮州黑石寺石造如來坐像. 보물.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석포리 1379])

흑석사 부근에 매몰되어 있던 것을 발굴하여 모셔놓은 석조여래좌상으로 불상을 안치하는 대좌(臺座)와 온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옆에 따로 놓여있다.

얼굴에는 양감이 적절하고 전체적으로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다. 신체는 안정감이 있어 보이지만 어깨가 약간 움츠려 들었고, 무릎 폭이 좁아진 점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이 나타난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얇은 옷은 자연스러운 주름을 형성하며 양 발 앞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대좌는 8각으로 상대석이 없고 중대석·하대석만 남아 있는데 하대석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구분해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표현했으며,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새겨넣었다.(출처 : 문화재청)

장식적인 대좌와 광배의 표현으로 미루어 9세기의 석불좌상 양식을 이어받은 귀중한 작품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 흑석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불상.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榮州黑石寺石造如來坐像)은 흑석사에 봉안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다.

현재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 구조로 된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다.

원래 사찰 부근에 매몰되었던 것을 발굴하여 봉안하였는데, 발굴 당시 마모가 심하였으나 현재는 석회로 보완해 놓았다.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흑석사 우측 경사면 위쪽 흑석사 마애삼존불상의 전면에 있으며, 당호도 편액도 없는 앞면이 개방된 보호각 아래에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 160㎝, 어깨너비 80㎝, 무릎 너비 90㎝이며, 머리 모양은 나발로 큼직한 육계가 표현되었다.

사각형의 얼굴은 적당히 살이 붙어 부드러운 윤곽과 함께 양감이 잘 나타나 있다.

가늘고 긴 눈, 높고 오뚝한 코, 듬직한 입 등이 균형 있게 배열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다.

불신은 상하 비례가 알맞아 안정감이 뛰어나다. 두 귀는 길게 늘어났으며 목에는 희미하게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으나, 오른손은 가부좌한 정강이 위에 얹은 정도이고 배 앞에 둔 왼손은 지물이 있었던 흔적이 있으나 후에 보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법의는 통견으로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쪽으로 옷 주름이 흘러내린다. 의문은 비교적 얇고 유려한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가슴에 보이는 평행한 옷 주름선이나 무릎의 옷 주름이 다소 형식화되었다.

대좌는 상대석이 없고 중대석과 하대석만 남아 있다. 중대석과 하대석 모두 8각으로 하대석에는 각 면에 안상이 1구씩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 겹잎의 연꽃잎이 아래로 향하고 있는 형태로 새겨져 있다. 중대석은 손상이 심하여 분별하기 어렵다.

광배는 주형광배(舟形光背)인 듯하며 두광과 신광은 음각 선으로 구분되어 있다. 두광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새기고 신광에는 구름무늬만 조각되었으며, 그 가장자리는 화염문이 양각되어 있다. 광배와 대좌의 형태는 신라 말기에 유행하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조각 수법이 우수하다.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정제된 얼굴의 모습, 약간 위축된 듯하나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형식화된 법의의 주름 등으로 볼 때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비롯하여 경산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제666호] 등 통일신라 말에 제작된 불상들의 의문과 비슷한 특징을 보여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의 제작 시기를 짐작하게 한다.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1980년 9월 16일 보물 제68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불신 조각의 우수함과 신체 비례의 균형 등 9세기 불상 조각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전각에 봉안되지 못하고 전면이 개방된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어 훼손 방지를 위한 별도의 보존 방안이 요구된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