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강원도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13년 만에 고향에 다시 서다

노촌魯村 2024. 11. 18. 13:22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13년 만에 고향에 다시 서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원장 임종덕)은 원주시(시장 원강수)와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하 ‘지광국사탑’)의 복원 공사를 완료하고, 2024년 11월 12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앞 광장(강원 원주시)에서 복원 기념식을 공동 개최하였다.
* 지광국사탑: 고려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70)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으로, 장식이 매우 화려하고 빼어남.

이번 행사는 지광국사탑이 113년 만에 원위치였던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에 다시 서는 것을 기념하고, 훼손되었던 탑의 보존처리와 복원의 성과를 알리는 뜻깊은 자리이다. 식전 공연(창작음악극)을 시작으로, 본 행사인 제막식과 지역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부대 행사도 진행하였다.(출처 : 국가유산청)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 국보 제101호.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로 132 (문지동, 국립문화재연구소))

이 탑은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67)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원래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일제시대에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었으며, 경복궁 경내에 있다가 보존처리를 위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졌으며, 기단 네 귀퉁이에 있던 사자상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오다 탑과 함께 옮겨졌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의 탑이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탑은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돌은 네 귀퉁이마다 용의 발톱같은 조각을 두어 땅에 밀착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지며, 7단이나 되는 기단의 맨윗돌은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돌을 깎아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탑신에는 앞뒤로 문짝을 본떠 새겼는데, 사리를 모시는 곳임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치켜올려져 있으며, 밑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았다. 머리장식 역시 여러 가지 모양을 층층이 쌓아올렸는데, 비교적 잘 남아있다.

법천사터에는 지광국사의 탑비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탑비를 세운 때가 고려 선종 2(1085)이므로 묘탑의 조성 시기는 국사의 입적 직후인 1070108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탑 전체에 여러가지 꾸밈을 두고,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등 자유로운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는데도, 장식이 정교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화려하게 꾸민 장식으로 인해 엄숙한 멋을 줄어들게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국보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전면 해체 보수한다

- 2019년까지 과학적 보존처리 시행 / 3.22. 해체 보고식 개최 -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맹식)는 경복궁 경내에 위치한 국보 제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을 전면 해체보존처리한다.

지광국사탑은 고려 시대에 국가에서 최고의 승려에게 내리는 왕사(王師)’‘국사(國師)’의 칭호를 받았던 지광국사(984~1067)의 사리탑이다. 화강암으로 제작된 높이 6.1m의 이 탑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유행했던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양식에서 벗어나 평면 4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주며, 정교하고 화려한 이국풍의 조각이 돋보이는 고려 시대 사리탑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 기단, 탑신 등이 팔각형으로 된 형식

애초 지광국사탑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제59)와 함께 법천사터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1년 일본인에 의해 옮겨져 1912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1990년 현 위치 오기까지 최소 9차례 이전되었다.    

특히, 6.25 한국전쟁 시 폭탄 피해로 옥개석을 비롯한 상부 부재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는 큰 손상을 입었고, 1957년 시멘트 등 다양한 재료로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광국사탑은 그간 시행된 정기조사(‘05, ’10),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14~’15), 안전진단(‘15) 등의 결과, 다수의 균열과 시멘트 복원 부위 탈락 등이 확인되었다. , 기단부와 시멘트로 복원된 옥개석, 상륜부의 구조적 불안정까지 더해져 석탑의 추가적인 훼손이 우려되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전면 해체보존처리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오는 14일부터 석탑 주변에 가설 시설물을 설치하는 준비정을 거쳐 오는 22일 오후 2시에 그 시작을 알리는 해체공사 보고식을 개최한다. 오는 42일까지 전체 부재를 해체하게 되며, 해체된 부재는 46일 경복궁을 떠나 대전에 위치한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운송될 예정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2019년까지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과학적 보존처리를 시행할 계획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생산한 유리건판 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

<글.사진 출처:문화재청>

1000년 동안 법천사지 지키던 지광국사탑 보고 싶다!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아래 걸린 현수막. 문화재는 제자리에 ...???)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碑. 국보 제59호.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0번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原州 法泉寺址 智光國師塔碑. 국보 제59호.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0번지)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984∼1067)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지광국사탑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출처 : 문화재청)

◇시대 : 11세기(1085년, 고려 선종 2), 고려시대 지광국사의 행적이 기록된 탑비
◇내력 : 이 탑비는 지광국사(智光國師)의 행적을 기록되어 있으며, 지광국사의 사리를 모신 현묘탑(국보 101호)은 우리나라 부도 중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것으로, 원래 이 절에 있었으나, 지금은 경복궁에 옮겨져 있다. 비문은 11세기 석비를 대표하는 걸작품으로서 비석의 재질은 연한 청색의 점판암이다. 글은 고려 초의 문장가인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구양순체로 썼다. 비의 앞면은 지광국사가 수도한 내력을 적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海鱗, 984~1070)의 속성이 원씨(元氏)로 원주의 토착세력 출신이었다. 법고사 관웅대사밑에서 수학하고 관웅대사를 따라 개경에 들어가 준광에게 출가하였으며 16세때 용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004년(목종 7) 21세에 승과에 합격한 이후 법상종 승려로서 대덕(大德)이 되었다. 고려 초 현종은 현황사를 창건하고 대대적으로 법상종 교단을 지원하였는데, 혜린은 71세인 1054년(문종 8) 개경에 있는 현화사 주지를 맡아 경전을 판각하였다. 그는 삼중대사․승통․왕사의 칭호를 받았고, 74세때인 1057년(문종 11) 봉은사에서 국사(國師)로 추대되었으며, 1070년(고려 문종 24) 이 절에서 돌아가셨다. 뒷면에는 1370여 명에 이르는 국사의 제자 이름 및 인원수를 적었다. 비석을 세운 연대는 1085년(고려 선종 2)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식적 특징 : 인근에 지광국사 현묘탑이 있었으나 이탑은 현재 경복궁내에 있다. 기단 사방에 각형 초석이 배열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탑비는 보호전각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신은 귀부위에 방형 비좌를 조성하고 홈을 판 다음 비신 하단에 장부를 내여 맞추어 세운 석비이다.  비석의 윗 부분인 이수(螭首)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 중심부는 탑의 상륜부와 같이  하늘을 나는 천녀(天女)․해․달 등과 함께 불교의 이상 세계인 수미산(須彌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복발위에 연꽃이 조각된 세 개의 보륜이 올려져 있다. 이수(螭首) 하단부는 탑의 탑신석을 전사한 것으로 건물 추녀가 하늘로 활짝 벌려 있는 모습처럼 네 귀퉁이와 그 사이에 꽃을 조각하여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중간 중간 보이는 두 개의 연꽃잎과 구름 속의 용(龍)을 환상적인 조각은 암막새 기와를 불교적 맥락으로 조형화 한 창의적인 도상으로 평가된다. 기단부가 2단의 장대석으로 되어 있는 점은 외벌대 장대석으로 기단이 조선된 영월 흥녕사 대사탑비와 다른 점이다(출처 :원주시청)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주위의 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