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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주

부석사(4)

노촌魯村 2006. 3. 28. 10:46

 

 

국보 제18호 고려시대
○소 재 지 : 부석 북지리
지정일자 : 1962. 12. 20

부석사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본전으로 신라 형식으로 보이는 석기단 위에 초석을 다듬어 놓고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배치하였다. 기둥은 배흘림이 많은 두리기둥을 세웠고, 지붕 네 모서리에 활주를 받쳤다. 공포는 헛첨차 없는 주심포양식으로 내외2출목이며, 가구는 전·후퇴 9량집의 팔작지붕이다. 전면은 정(井)자 살창으로 되어 있고, 후면은 중앙칸에 신방을 두어 쌍여닫이 판장문에 그 양쪽에는 붙박이 살창을 달고 내부에 판문을 덧댔다. 상부가구수법은 횡단면으로 보아 외진의 평주와 내진의 고주 사이에 퇴량이 걸려 있다. 고주와 고주 사이에는 대량과 그 위에 종량이 걸쳐 솟을 합장과 대공이 그 위에서 종마루를 받치고 있다. 내부 바닥은 전돌을 깔고 남향하는 건물의 서편에 불단을 만들었다. 그 위에 장육의 아미타여래상을 동향하여 안치하였으며 그 상부엔 보개를 두었다. 1916년에 있었던 해체 보수때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7년(1358) 왜화를 당한 것을 고려 우왕 2년(1376)에 중수하였다 하였으나 가구방식이나 세부수법에 장식적인 요소가 적은 점과 주두, 소루 등이 내반된 곡을 가지고 굽받침이 남아 있는점 등 전체적인 건축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중, 404) 

 

 

 

 

 

 보물 제249호 통일신라시대
○소 재  지 : 부석 북지 149
지정일자 : 1963. 1. 21

무량수전의 동편 약간 높은 지대에 있다. 2중기단에 3층의 석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대석과 하층기단의 하대를 한데 붙여 8석으로 짜고 중대석 각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있어 3구로 구분하였으며 갑석은 6매석이다. 상층기단은 4매석으로 갑석을 짜고 각면에 우주 1주를 모각하였다. 탑신과 옥개는 각층마다 1석으로 구성되었는데 옥신 표면에는 우주가 있을 뿐 아무 장식도 없다. 받침은 각층 모두 5단씩으로 되어 있고, 처마 아래는 직선이나 전각에 반전이 있으며 그 좌우에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옥개석 위로는 괴임을 두어 옥신석을 받쳤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 있다. 노반은 1단의 갑석이 있고 복발은 편구형으로 횡대가 있고 그 위에 사방에 꽃모양이 양각되었다. 1960년대 해체 수리시 3층탑신 중앙에 얕은 사리공이 확인되었으나 사리장치는 없었고, 기단부에서 철제탑, 불상조각, 구슬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높이 526cm, 기단 폭 356cm) 〔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중, 404〕

 

 

 

 

 

국보 제19호 고려시대
○소 재  지 : 부석 북지 151
지정일자 : 1962. 12. 20

부석사 조사당은 무량수전 뒷산에 있는 건물로 이 절을 지은 의상조사의 진영을 안치하고 있다. 건물의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신종 4년(1201)에 단청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건립된 것이 확실하다. 그 후 고려 공민왕때의 병화로 소실된 것을 우왕 3년(1377)에 원응국사가 재건하여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조선 성종 21년(1572)에 경연한 기록이 있어 이 건물의 변천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건물은 낮은 장대석 기단위에 있는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으로 헛첨자가 있는 주심포계의 건물이다. 창호는 전면 중앙에 출입문이 있고 그 좌우에 광창이 있다. 지붕은 전면이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이며, 맞배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건물 내부의 입구 좌우에 보살상, 사천왕상 등 고려말에 그려진 벽화가 있었는데 1918년에 벽을 떼어서 보장각내 유리장에 보존하고 있다.문화재관리국, 1977, 『문화유적총람』중, 405〕

목조건축으로 느끼는 선조들의 숨결(고려시대 목조 건축물-국보)

: http://visit.ocp.go.kr/visit/cyber_new/serv03.jsp           

 

 

 

 

 

 

 

 

부석사조사당벽화 (浮石寺祖師堂壁畵.국보 제46호.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9 부석사)

이 벽화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지금은 벽화가 있는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 유리상자에 담아 무량수전에 보관하고 있다.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색·백색·금색 등으로 채색하였으며,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 폭 75㎝ 가량이다. 양쪽의 두 천부상은 우아한 귀족풍으로 양감이 풍만하며, 가운데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 보는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년(1377)임을 알게 되었으며,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초정밀 마이크로의 세계, 

고려불화 한 폭에 15,000명의 부처를 그리다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보물 제1286호. 경기 용인시 처인구 용인대학로 134, 수장고 (삼가동) )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그가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관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주위에 금가루로 원형을 그려 놓았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베일의 바탕과 주름선은 백색으로 그린 다음 금가루에 아교를 섞은 금니로 겹쳐 그렸고 안쪽에는 고려문양의 특징인 연꽃덩쿨무늬를 원안에 넣었다. 입고 있는 치마는 붉은색을 칠하고 백색으로 거북 등껍질 문양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덧그려 문양이 뚜렷하다. 이 그림은 1994년에서 1996년까지 보수작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상태로 색채가 매우 양호하다. 전체적으로 안정되었고 고려 불화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수월 관음도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에서 캡쳐 한 화면

 

 

 

 화엄종(華嚴宗)을 나타내는 화(華)자가 부석사에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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