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산은 울주군 온양면 운화리에서 양산군 웅상면 명곡리와 삼호리에 걸쳐 있는 높이 742m의 산이다.
이 산의 초명은 동국여지승람이나 오래된 읍지에 불광산으로 되어 있었으나 언제인가부터 대운산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대운산 계곡을 따라 조금 걷다보면, 큰 호박소(일명: 애기소)가 보인다.
옥류같은 맑은 물이 흐른다. 녹음낀 등산로가 대운산 주봉과 둘째봉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이 계곡을 도통곡이라 한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 골짜기 용심지(암자)에 살면서 도를 닦았다 하여 도통곡이라 전해온다.
계곡을 따라 중간쯤 오르다보면 산비탈에 기역자처럼 보이는 웅장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포크레인 바위’라고도 하며, 이 곳에서 공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지은 이름인 것으로 생각된다.
바위 주변에는 소원을 빌며 태우다 남은 촛불과 과일이 담긴 쟁반이 놓여 있었다. 다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하여 가파른 곳을 약 20분 오르면 용심지(대운산 743m 정상 아래 600여 미터 정도에 위치한 곳)가 눈앞에 보인다.
땀을 식히며 동남쪽으로 멀리 내다보면 남창 주위 여러마을이 한눈에 보이고, 서생, 온산 앞바다가 지척에 보이니, 새벽 해뜰 무렵 일출은 빼어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장관이다.
이 곳에 서 있노라면, 왜 원효대사가 여기를 수도하는 장소로 택했던건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주변 뒤 북쪽을 둘러보면 작은 계곡에서 맑은 물이 졸졸 흐른다.
입구 암벽에 글귀가 있다. [갑술칠월 일낙양당 성관정]이라 음각한 마애석각이 있어 뜻풀이를 하여도 불교적 의미가 있어 명쾌한 뜻풀이가 되지 않아 의문이다.또 신기한 것은 마애석각 바로 옆 그 당시의 삽작문(대문)의 흔적이 남아 있다.석벽에 나무막대기를 끼워 걸친 홈이 파여 있는 것으로 사찰에서는 빗장이라 한다.
그와 유사한 것으로 제주도의 정낭이 있는데, 정낭은 서까래 크기의 나무 세개를 양쪽에 세운 정주석(구멍이 3 ∼ 4개 뚫린 커다란 돌)에 끼워 넣거나 빼 놓으므로써 집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알리는 제주도 특유의 풍물이다.
내원암
내원암은 대운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신라시대 대원사의 9암자 중 하나이다. 신라 전통고찰로서 울산광역시 4대고찰(석남사, 문수사, 신흥사) 중의 하나로써 지금부터 75년 전 을축년에 불이 나서 건물이 전소되었다.
내원암은 신라시대 대원사의 암자이면서 양산시 하북면에 있는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 불교 전성시대 온양읍 사방에 사사구암이 있었는 바 내원암은 당시 그 일암으로써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으며 산수미려하여 피서지로 명성이 높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남으로 힘차게 달리다가 한숨 쉬면서 명산을 이룬 곳이 대운산이다. 신라 중기에 고봉선사께서 남쪽 기슭에 대원사를 창건하였고 연꽃 봉우리 모양의 5악봉 가운데 내원암이 있는데 남쪽 지방에선 제일의 명당이라 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서도 불광산 대원사지가 등제되어 있으며 애기소를 비롯해 물이 맑고 깨끗하여 골짝들이 모두 하얗고 뽀얘서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한다. 가파른 암벽길을 지나고 나면 기도 도량으로서 아늑한 곳에 암자가 있다.
내원암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면서 5~600여 년을 버티고 있는 고목이 신비한 코끼리 모양을 하고 지나가는 등산객들의 쉼터를 마련해 주고 있으며 입구의 암벽은 소금강을 연상케 할 말큼 폭포와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못다한 아쉬움을 고하는 이별바위, 돌을 던져 득남을 기원하는 소원바위, 나한바위, 금강폭포 등 우리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라한님에 옷깃을 여미고 소원을 기원하며 이별암에서 다시 새로운 만남을 다짐한다.
내원암의 대웅전 벽화
수세전이란 현판이 있어 내부를 보니 산신, 칠성탱화.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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