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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처용암 및 처용가(귀신을 쫓는 사나이, 처용(處容)은 누구인가?)

노촌魯村 2006. 5. 22. 10:22

역신마저 감화시킨 ‘처용’
헌강왕과 인연 맺어 ‘관용’ 전한 곳

 

 처용암

 처용가비
 신라 49대 헌강왕 때는 경주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이어져 있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다. 사방에서는 풍악과 노래 소리가 길거리에 번졌고 나라가 태평했다. 이에 헌강왕이 개운포(開雲浦)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안개가 어둡게 뒤덮여 길을 분간할 수 없었다. 일관(日官)은 “바다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헌강왕은 즉시 세죽(細竹)나루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했다. 영을 내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히고 해가 났다.
 동해 용왕은 크게 기뻐하며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 가운데 처용이 왕을 따라 경주로 들어와 왕을 보좌했다. 이때 처용이 나온 바위를 처용암이라 불렀다. 왕은 처용에게 미모의 여자를 아내로 삼아주어 그의 뜻을 잡아두려 했고, 또 급간(級干)이란 벼슬까지 내렸다. 그런데 처용 아내의 미모에 반한 역신이 처용이 없는 틈을 타 간통을 한다. 아내와 역신이 같이 잠자리에 있는 것을 본 처용은 화를 내는 대신 노래를 하며 춤을 추었다.
 
 동경 밝은 달에 밤들이 노니다가
 들어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러라
 둘은 내해였고 둘은 누구핸고
 본디 내해다마는 빼앗은 것을 어찌하리오. 
처용의 포용력에 감복한 역신은 “공의 형용을 그린 그림을 보면, 그 집문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헌강왕 때 동해용을 위해 지은 절이 울산군 청량면 영취산에 있는 망해사(望海寺)다.
 

   

망해사 법당 뒷면에 그려진 벽화. 신라 헌강왕과 처용의 조우 장면이다

 

귀신을 쫓는 사나이, 처용(處容)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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