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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금원산 가섭암지

노촌魯村 2008. 4. 27. 21:19

 가섭암지의 일주문에 해당하는 문바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산6-2 해발 1353m의 금원산 지재미의 문바위는 단일 바윗돌로는 국내 최대 크기 사각형 모양이며 신의 도끼로 만든 것처럼 반듯하다 .지재미는 문바위를 오르는 골짜기를 일컫는 이름으로 옛날 이 골짜기에 지장암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 골짜기를 따라가면 문바위가 있으며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 제530호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을 지키는 문지기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구한말 애국지사인 면우 곽종석 선생이 이곳을 찾아 문바위를 노래한 칠 언절구로 말미암아 더욱 널리 퍼졌다. 시냇가에 우뚝 솟은 바윗돌 신의 도끼로 다듬어 낸 듯/ 머리 위에 소나무 자란 것 더욱 정을 끄누나/ 높이 치솟아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네/ 저처럼 부끄러울 일 없이 푸르게 살아가리라. 문바위를 순절암, 두문암으로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고려 말 충신인 달암 이원달의 망국의 한에 얽힌 전설이 구전되고 있어 숙연케 하기도 한다. 이원달은 여말 참판의 벼슬을 지내다가 이성계 일파에 의해 최영, 정몽주 등이 비명에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고향인 이곳 위천으로 돌아와 우국의 마음으로 나날을 지새웠다. 마침내 고려조가 멸망하고 조선조가 세워지자 태조 이성계는 이원달의 재주가 아까워 여러 번 불렀으나 불사이군의 충정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두문동 왕씨들의 비참한 소식을 전해 듣고는 금원산 지재미 골짜기에 숨어 살다가 비통한 한을 품은 채 죽었다고 한다. 이때 이원달과 함께 이곳으로 온 부인도 남편을 따라 함께 숨졌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이 바위를 순절암, 또는 두문암으로도 불렀다. 이 밖에도 주민들 사이에는 문바위와 관련된 설화들이 여러 가지 전승되고 있다.

일설에는 옛날에 천태산 마구할멈이 금원산에서 두 개의 큰 돌을 아주 가는 칡끈으로 묶어서 내려오다가 그 중 하나는 문바위가 있는 아랫녘 넓은 초원인 황사밭터에 놓아두고 하는 지재미에 와서 놓았다고 한다. 이 두 개의 바위는 암수가 정해져 있어서 황사밭에 있는 것이 숫바위고 지재미 문바위가 암바위 라고 한다. 지재미의 문바위에는 이 바위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이곳은 항상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한다. 어느 때 백제와 신라가 이곳을 중심으로 하여 다시 격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싸움이 격렬해지면서 신라군은 백제군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백제군의 승리는 거의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이때 신라군의 장군 나아가 마상에서 하늘을 우러러 기원을 했더니 신의 게시가 있기를 이 바위 속의 갑옷을 입고 싸우면 백제군을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장군은 신의 게시대로 문바위의 문을 열고 들어가 갑옷을 꺼내 입고 싸움을 하여 백제군에게 대승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유래만 전할 뿐 정확히 이 바위로 통하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언제인가는 출중한 인물이 나타나서 이 문바위의 문을 열 때가 잇을 것이라고 이곳 주민들은 밑도 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어느 도인이 바위 두개를 들고 설악산으로 옮기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가던 중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바위 하나를 이곳에 떨어뜨리고 갔는데 그 바위가 문바위라고 한다. 그래서 설악산에도 문바위와 같은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 두 바위는 한 쌍이라고 한다. 이 문바위 위에는 몇 그루 노송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마애삼존불이 조각되어 있다. 문바위 뒤로는 신라부터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우암이 있다. 이 기우암을 지우암이라고도 하는데 이 지우암은 비가 올 것을 미리 알려 주었다고 하여 새겨 난 이름이다. 그러 현종 3년(1012년)에 온 나라를 뒤덮은 한발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이곳에서 전국의 기우제를 지낸 일이 있다 한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소나 돼지를 잡아 그 피를ㄹ 바위 사방에 흩고 제물을 차려 제를 지내는데 제주는 옛날에 현령이나 군수였으며 임금이 직접 제주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기우제를 지내고 난 다음 잡은 고기를 솥에 넣어 삶아서 인근 주님들이 모두 이 고기를 먹는데 음식을 다 먹기 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바위 위쪽에서 지재미 골짜기 입구 쪽을 바라보면 쌀 이는 폭포가 흰 거품을 일으키며 시원하게 흐른다. 옛날 이 폭포 위쪽에는 동암사라는 큰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스님 등이 이 계곡에서 식사를 할 쌀을 씻었는데 쌀 씻는 뜨물이 희게 흘러 내려 쌀 이는 폭포라 했다 한다. 이렇게 문바위 주변은 아름다운 산수와 함께 많은 이야기가 전승되는 전설의 보고로 유명하다. 문바위 주변환경 소개 문바위가 위치하고 있는 곳는 금빛원숭이의 전설과 빼어난 자연 절경으로 유명한 금산산자연휴양림속에 있으며 자연휴양림은 거창군에서 직영하면서 고로쇠체험과 숲속음악회, 트랙트관광, 얼음조각작품전시, 얼음썰매장 등 4계절 프로그램 활성화를 통하여 활기를 뛰고 또한 유안청폭포가 절경을 이루고 또한 자연휴양림안에는 보물 제530호로 지정된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이 있다. 연중 수많은 관광객은 물론 기백산, 현성산, 금원산의 등산객이 끝이지 않고 찾아오는 곳이다.(거창의 전설 박종섭편에서)

 

 문바의 뒤 모습

 달암 이선생 순절동

 

 가섭암지 마애삼존불 가는 길

 

 바위 사이 돌 계단을 올라서면 가섭암지마애삼존불이 있음

 

 가섭암지마애삼존불상(迦葉庵址磨崖三尊佛像 보물  제530호)

이 불상은 석굴(石窟)의 암벽(岩壁)에 새긴 삼존불(三尊佛)인데, 전체를 보주형(寶珠形)으로 파서 광배(光背)인 동시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홈의 구실을 하게 하였다. 본존불(本尊佛)은 넓적한 얼굴에 삼각형의 코, 작은 눈과 입, 민틋한 귀 등 둔중(鈍重)하고 토속적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좌우협시보살(左右脇侍菩薩) 역시 비슷한 형태의 얼굴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긴 체구의 신체는 양감(量感)이 거의 없이 조각되었는데, 각진 어깨, 밋밋한 가슴, 부자연스런 팔과 발목 등 신체 각 부분의 모습은 매두 도식적이며, 신체 양쪽으로 새깃같이 뻗친 옷자락은 삼국시대불상(三國時代佛像)에서 보이는 표현이지만 삼국시대 양식이 아닌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새로 나타난 도식적인 수법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불상은 삼국시대 불상양식을 게승하여 도식화한 모습으로 표현한 고려시대의 삼존상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정보센터)

 

 

 본존불(아미타여래)

 좌협시불(지장보살)

 우협시불(관세음보살)

 

 계단 아래에 있는 요사채

 

 거창박물관에 전시 된 가섭암지 관련 전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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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 (거창박물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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