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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삼천포 대방진굴항

노촌魯村 2008. 5. 25. 22:07

 대방진 굴항 비석

대방진굴항의 유래에는 몇 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 1302년(고려 충렬왕 28)에 건립되었다는 설이다.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어선이나 군선을 숨겨두기 위해 인공으로 축조하여 병영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둘째, 임진왜란 때 이충무공이 사천대첩을 숭리로 이끌 수 있게 한 요새지였다는 설이다. 굴항은 해안에서 내륙으로 오메가(Ω) 모양으로 파들어 간 뒤 축대를 쌓았는데, 그 면적은 700평 정도였다는 것이다.

셋째, 조선 말기인 1820년에 진주 관하의 72개 면민이 동원되어 보수공사를 했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에는 굴항이 없었다는 설이다.   

일반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숨겨 두었다가 왜적이 나타나면 갑자기 출선시켜 왜적을 격퇴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 굴항은 현재 유일하게 군항의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경상남도 도문화재자료 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방진 굴항(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3호)

대방진굴항은 고려시대 우리나라 연안(沿岸)을 빈번히 침범(侵犯)하던 왜구(倭寇)의 노략질을 방비(防備)하기 위하여 설치한 구라량(仇羅梁)의 영(營)이 있던 곳으로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있었다. 그 뒤 구라량이 폐영(廢營)이 되면서 소규모의 선진(船鎭)으로 남아 있다가 조선시대(朝鮮時代) 말경 순조(純祖) 때 비로소 이곳에 굴항(掘港)을 축조하였다. 이 역사(役事)에는 진주목(晋州牧)에서 관내 72개 면민(面民)을 동원하여 부역(賦役)을 시켰으며 굴항이 축조된 다음에는 이곳에 조곡 운송선과 전함이 정박했다.(사천시청 자료)

 대방진 굴항(안쪽에서 본 모양)

 

 

 대방진 굴항의 바깥쪽의 어선들

 대방진 굴항으로 들어가는 수로

 

 대방진 굴항

 

  

 

  

 충무공이순신장군상

 대방진 굴항 가까이 있는 삼천포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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