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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노촌魯村 2009. 2. 12. 23:05

3)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국보 제3호로 해발 556m의 북한산 비봉(碑峰) 정상부에 있었으나 중앙국립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원래의 그 자리에는 모조 비석이 서 있다. 화강석으로 된 비는 높이 155cm, 폭은 71cm이다. 신라 제24대 진흥왕 때(540~576)에 왕의 북한산 순행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오랜 세월로 비문은 거의 마멸되었으나 일찍이 금석학의 대가인 추사 김정희에 의하여 진흥왕 순수비임이 밝혀졌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진흥왕 때는 화랑도의 공인과 병행하여 그 국력이 나날이 뻗어나가 장차 삼국통일의 탄탄한 기초를 마련했던 시기이다. 진흥왕은 백제 성왕과 함께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상류 지역의 10개 군을 차지하고, 백제는 한강 하류 지역의 6개 군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진흥왕은 두 해 뒤에 백제와의 동맹을 깨고 백제를 공격하여 한강 하류 지역까지 차지함으로서 완전히 한강유역의 일대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한강유역은 인력과 물자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선진 중국과 통교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삼국이 한강유역을 사이에 두고 격렬한 싸움을 벌인 것은 이 때문이며, 결국 신라의 차지가 됨으로써 삼국통일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북한산순수비는 한강의 상류뿐만 아니라 하류에 이르기까지 전 지역이 신라의 영역임을 과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비석에서 당시 화랑도의 뻗어 가는 기상을 엿볼 수 있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search_photo_list.jsp?VdkVgwKey=13%2C02280000%2C11&queryText=%28%60%C1%F8%C8%EF%BF%D5+%BC%F8%BC%F6%BA%F1%60%29%3Cin%3E%28z_title%2Cz_content%29&mc=KS_01_02_01&VdkVgwKey=13%2C02280000%2C11&x=17&y=8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11,00030000,11&queryText=(`진흥왕%20순수비`)<in>(z_title,z_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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