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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남천정(南川停 : 설봉산성)

노촌魯村 2009. 2. 12. 23:07

2) 남천정(南川停 : 설봉산성)

설봉산성은 경기도 이천군 이천읍 관고리의 설봉산(雪峰山)위에 있다. 해발 325m의 아랫봉우리를 둘러싸는 1.8km의 길이를 갖는 성터가 남아 있다. 해발 394m의 설봉산 윗봉우리를 감싸는 작은 산성이 하나 더 있다. 이 두 산성을 잇는 좁은 말잔등 처럼 놓여 있는 산 능선에는 1~2m 너비로 닦아 쌓은 듯한 길이 나 있는데 두 성을 잇는 길로 가늠된다. 성의 모서리에는 곳곳에 큰 언덕을 만들어 7개의 망대를 만들었고, 성벽 아래는 가파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 325m의 아랫 봉우리 가까운 곳에 장대(將臺)터로 보이는 주춧돌이 3줄로 나 있으며, 그 아랫쪽 칼바위 옆에 있는 바위에 지름 19cm, 깊이 15cm의 둥근 기(旗)꽂이 구멍이 파여져 있는데 기를 꽂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설봉산 윗 봉우리의 작은 성은 먼곳을 살피기 위한 망루의 역할을 했으며, 후대에는 왜성이라 부르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머물렀던 것으로 말미암아 유래된 듯하다.

이 설봉산성은 남천정(南川停)으로 비정되고 있다. 이 산성이 세워진 곳은 옛 이름이 남천(南川)이었고, 처음에는 백제의 땅이었다가 고구려에 들게 되었고, 진흥왕 때 신라의 땅이 되었던 것이다. 이천읍을 감싸고 있는 설봉산은 이천의 진산(鎭山)으로 남천성을 이곳에 두어야 할 지리상 전략상의 필연성으로 보아 지휘 본부를 이 산성에 두고 장대(將臺)를 지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흥왕 10년(549) 남천정에 대대감을 두었으며, 진흥왕 16년에는 남천정을 10정(停)의 하나로 삼았다. 태종무열왕 7년(660)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왕이 직접 김유신장군을 비롯한 제장들과 정병 5만을 이끌고 22일만에 남천정에 도착하였다. 신라군은 이곳에 진을 치고 전열을 정비한 다음에 방향을 남쪽으로 돌려 황산벌로 진군하였던 것이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search_photo_list.jsp?VdkVgwKey=13%2C04230000%2C31&queryText=%28%60%BC%B3%BA%C0%BB%EA%BC%BA%60%29%3Cin%3E%28z_title%2Cz_content%29&mc=KS_01_02_01&VdkVgwKey=13%2C04230000%2C31&x=31&y=6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13,04230000,31&queryText=(`설봉산성`)<in>(z_title,z_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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