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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칠중성(七重城)

노촌魯村 2009. 2. 12. 23:09

4) 칠중성(七重城)

 

 

칠중성은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지역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이다. 이 지역은 백제의 난은별(難隱別)이었는데, 고구려와 신라는 칠중성이라 하였으며 경덕왕 때 중성(重城)이라 했다. 성의 둘레가 약 590~680m의 석축산성으로 성 안에 우물도 한 군데 있었다. 서울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은 요새였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많은 전투가 있었다. 선덕여왕 7년(638) 고구려군이 쳐들어오니 주민들이 산 속으로 피하였다. 이에 왕은 알천(閼川)을 보내 칠중성 밖에서 싸워 물리쳤다.

태종무열왕 7년(660) 고구려군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와 칠중성을 포위하였다. 현령 필부(匹夫)는 20여일 동안 성을 잘 지켰다. 그러나 고구려군에 내응한 대나마(大奈麻) 비삽(比揷)을 참살한 후 전세가 불리하여졌다. 이 때 필부는 “충신과 의사는 죽어도 또한 굴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힘써 싸우자! 이 성의 존망은 실로 이 한 싸움에 달려 있다.”하고 주먹을 휘두르며 부르짖으니 병자(病者)까지도 모두 일어나 싸웠다. 고구려군은 바람을 이용하여 성에 불을 지르고 성안으로 쳐들어왔다. 필부는 화살이 빗발같이 날아 들어와 온 몸에 맞아 구멍이 둟리고,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러 드디어 쓰러져 죽고 성은 함락 당하였다.

문무왕 때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칠 때 신라군은 이 칠중성을 쳐서 진격로를 개척하였다. 또 문무왕 15년(675) 당이 신라를 침탈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켰을 때, 이 성은 잠시 적의 수중에 넘어갔으나 곧 도로 찾았다. 그 해에 당나라는 거란과 말갈의 세력까지 규합하여 이 성을 공격하였으나, 신라군의 줄기찬 응전으로 이를 물리쳤다. 이것은 삼국통일의 중요한 한 고비였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13,04370000,31&queryText=(`칠중성`)<in>(z_title,z_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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