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화랑유적지

관산성(管山城)

노촌魯村 2009. 2. 13. 11:59

11) 관산성(管山城)

관산성(管山城)은 충북 옥천군 군서면에 있는 환산성(環山城)으로 추정하고 있다. 환산성은 일명 고리산성(古利山城)이라고도 한다. 일본서기에는 함산성(函山城)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 성은 신라와 백제가 한강 유역의 주도권 쟁탈을 위하여 일대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551년 백제와 신라의 동맹군은 북진군을 일으켜 한강 유역 일대에서 고구려의 세력을 몰아 내었다. 백제는 한강 하류의 6군을 회복하였고, 신라는 죽령 이북 고현(高峴) 이남의 10군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신라의 진흥왕은 군사를 돌이켜 동맹군인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마저 점령한 뒤에 그 곳에 신주(新州)를 설치하였다. 신라로서는 중국과의 교통로를 확보하고, 한편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얻어 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이에 백제 성왕은 일본에 원군을 청하는 한편 대가야와 연합하여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하였다. 처음에는 백제군이 우세하여 각간 우덕(角干于德)과 이찬 탐지(伊湌耽知) 등이 거느린 신라군이 패주하였다. 그러나 신주 군주(新州君主)인 무력(武力)의 신라 원군이 당도하자 양국 사이에 대접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는 신라와 백제 양국이 국가의 운명을 걸었던 대회전이었다. 이 때 백제는 성왕이 전사하고 좌평 4인, 군졸 3만 명이 전사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양국의 대결은 결국 신라의 대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신라는 한강 유역을 점유하여 통일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화랑유적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사지성(內斯只城)  (0) 2009.02.13
삼년산성(三年山城)  (0) 2009.02.13
조천성(助川城)  (0) 2009.02.13
낭비성(娘臂城)  (0) 2009.02.13
병무관터  (0) 200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