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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조천성(助川城)

노촌魯村 2009. 2. 13. 11:58

10) 조천성(助川城)

조천성(助川城)은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에 있는 대왕산성(大王山城)에 비정되고 있다. 대왕산성은 대양산성이라고도 한다. 문화유적총람에 보면 대왕산성은 학평(鶴坪)부락 북방 약 1km인 대왕산(大王山 : 387.8m) 산정을 감고 있는 석축산성으로 현재는 완전히 무너졌으며, 신라와 백제계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성의 둘레가 약 657m이다.

조천성은 낭도 김흠운(金欽運)과 승려 출신 취도(驟徒)가 충렬의 정신을 후세에 전한 곳이다.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을 보면 김흠운은 신라 내물왕 8세손으로 어려서 화랑 문노(文弩)의 문하에서 배웠다. 그는 누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하여 이름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감개하여 눈물을 흘리며 생각을 가다듬고, 스스로 격려하여 그런 사람과 같이 되려고 결심하였다. 같이 수련하던 승려 낭도 전밀(轉密)은 “이 사람이 만약 적진으로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태종무열왕 2년(655)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변경을 침범하였다. 왕은 군사를 일으키고, 김흠운을 낭당대감(郎幢大監)으로 삼으니, 그는 집안에 들어가 잠을 자는 일이 없고, 비바람을 맞으며 군사들과 고락을 같이하였다. 백제의 경계에 이르러 양산(陽山)밑에 병영을 설치하고 조천성(助川城)으로 나가 치려고 하였는데, 백제군은 밤을 이용하여 달려와서 동이 틀 무렵까지 쉬고 있다가 갑자기 쳐들어오므로 신라군은 놀라 당황하고 혼란해졌다. 백제군은 어지러운 틈을 이용하여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대며 공격하였다. 김흠운은 말에 올라앉아 칼을 빼어들고 나가며 용감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를 본 대감 예파(大監穢破)와 소감 적득(少監狄得) 소기당주 보용나(少騎幢主寶用那) 등도 함께 싸우다 전사하였다. 사람들은 충용스런 김흠운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하여 양산가(陽山歌)를 지어 부르며 슬퍼하였다.

한편, 삼국사기 취도(驟徒)열전에 보면, 그는 일찍이 승려가 되어 이름을 도옥(道玉)이라 부르며 실제사(實際寺)에 살았다. 태종무열왕 때 백제가 군사를 이끌고 조천성으로 침입하므로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싸웠으나 승부를 결단하지 못하였다. 이 때 도옥은 깊은 생각 끝에 군인이 되어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법의(法衣)를 벗어버린 다음 군복으로 갈아입고 이름을 고쳐 취도(驟徒)라 하였는데, 이는 ‘빨리 달리는 무리’라는 뜻이었다. 그는 조천성에서 백제군과의 전쟁에 나서게 되었다. 싸움이 벌여져 깃발이 휘날리고 북소리가 서로 엉켜질 때 취도는 창을 높이 들고 적진으로 돌격하여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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