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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아막성(阿莫城)

노촌魯村 2009. 2. 13. 20:28

1) 아막성(阿莫城)

 

 

아막성(阿莫城)은 전라북도 남원군 운봉면에 있다. 함양군과 접경을 이루고 아영고원의 서쪽 능선과 봉화산(烽火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660m의 고지에 북쪽을 향하고 있는 성이다. 성의 서편은 장수군 번암면으로 남원에서 장수로 연결하는 요천강(蓼川江) 상류이며 동편은 약 400m 고지를 이루어 천연의 요새지를 이루고 있다. 이 일대는 백제에서는 아막산(阿莫山), 신라에서는 무산(毋山) 등으로 불렀는데 역사상 신라와 백제 사이에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 산성이 최근 아막성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단정할 근거는 아직 없다.

진평왕 건복(建福) 19년(602) 8월에 백제가 대군을 이끌고 와서 아막성을 포위하였다. 왕은 파진간 건품(乾品), 무리굴(武梨屈), 이리벌(伊梨伐)과 급간 무은(武殷), 비리야(比梨耶) 등으로 하여금 백제군을 막게 하였다. 이 때 귀산(貴山)과 취항(취項)도 아울러 소감(少監)으로 삼아 출전하게 하였다. 귀산은 급간 무은의 아들로서 일찍이 취항과 함께 원광법사로부터 세속오계를 전수 받아 평생의 계율로 삼아 수련하고 있었다.

백제군은 패하여 천산(泉山)의 연못가에 복병으로 숨어 기다렸다. 신라군은 공격하였으나 힘이 다하고 곤궁하여 군사를 이끌고 돌아섰다. 귀산의 부친 무은도 후군이 되어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오고 있었다. 이 때 백제의 복병이 갑자기 내달아 공격해 왔다. 신라군은 뜻밖의 기습을 받아 어쩔 수 없는 곤경에 빠졌다. 이 때 귀간이 앞장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 일찍 임전무퇴의 정신을 배웠거늘 어찌 도망가겠는가?”하고 달려들어 백제군 수십명을 쳐죽이고 자기의 말에 부친을 태워보내고 취항과 더불어 칼을 휘두르고 힘을 다하여 싸웠다. 이를 본 모든 군사들이 분격하여 일제히 백제군에 덤벼들었다. 백제군은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한 신라군의 적수가 되지 못하여 시체가 들에 가득히 깔리고 한 필의 말과 한 짝의 수레바퀴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귀산과 취항은 온 몸에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그들은 죽음으로 오계의 정신을 실천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세속오계는 화랑도의 실천계율이 되었던 것이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KS_01_02_01&VdkVgwKey=23,00380000,35&queryText=(`아막성`)<in>(z_title,z_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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