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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유적지

아달성(阿達城)

노촌魯村 2009. 2. 13. 20:30

1) 아달성(阿達城)

아달성(阿達城)은 강원도 이천군 안협(安峽)으로 비정되고 있는데 문무왕 15년(675) 소나(素那)가 분전한 곳이다. 675년 무렵은 나당전쟁(羅唐戰爭)이 치열한 때였다. 신라는 백제의 옛 영토를 차지하고 다시 고구려의 부흥세력을 포섭하여 당의 침입에 대항하고 있었다. 이 해 봄에 아달성 태수인 급찬(級湌) 한선(漢宣)이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서 모두 성 밖으로 나가 삼(麻)을 심도록 하였다. 말갈의 첩자가 이를 추장에게 보고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성밖의 밭에서 일할 때 말갈군사가 아달성으로 쳐들어와서 노략질하였다. 이 때 성안에는 노인과 어린이만 있어 크게 낭패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급보를 들은 소나(素那)는 칼을 휘두르며 적진을 향해 외치기를 “내 본래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를 도모하려 하지 않는다. 어디 싸우고 싶은 자가 있으면 곧 나오지 못하느냐?”하고 드디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적진으로 돌격하였다. 적들은 감히 가까이 달려들지 못하고 빗발처럼 활을 쏘았다. 이렇게 진시(辰時:08시)로부터 유시(酉時:18시)에 이르기까지 싸웠는데, 소나는 온몸에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꽂히고 드디어 쓰러져 전사하였다. 소나가 아달성에 처음 부임할 때에 적국이 가까워 아내를 집에 머물러 두고 홀로 가 있었다. 고을 사람들이 소나의 전사소식을 듣고 모여들어 그의 아내를 찾아가 위로하자, 그녀는 울면서 남편이 평소에 말하기를 “장부(丈夫)가 마땅히 싸움마당에 나가서 죽어야지 어찌 자리에 누워 집사람의 손에서 죽겠는가?”라 말했는데 이제 그의 뜻과 같이 되었노라고 했다.

이 아달성전투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후 18차례에 걸친 크고작은 전투에서 신라군은 당군(唐軍)을 물리쳐 모두 승리하여 안변의 북방인 덕원까지 북진함으로써 삼국통일의 완수를 한걸음 전진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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