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경주인근자료

신라 능묘 특별전1 황남대총(신라王, 왕비와 함께 잠들다.)

노촌魯村 2010. 12. 30. 20:01

 

 

경주황남리고분군(慶州皇南里古墳群.사적  제40호.경북 경주시  황남동 6-1)

경주시내 평지 무덤들 가운데 서남쪽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이다. 크고 작은 무덤 20여 기가 남아 있는데, 1973년 ‘대릉원’이란 고분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 안에는 천마총·황남대총·검총 등과 미추왕릉이라고 전하는 무덤이 포함되어 있다. 내부구조는 대부분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으로 보인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판 뒤 덧널(곽)을 설치하고 자갈과 냇돌로 덮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 중 천마총은 금관·금제허리띠(금제과대)등을 비롯하여 각종 호화로운 유물이 나왔으며, 색이 칠해진 천마도가 나와 신라시대 그림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높이 23m, 남북 길이 120m, 동서 직경 80m로 경주에서 가장 큰 황남대총은 표주박 모양으로 연결된 두 개의 무덤으로, 남자와 여자의 무덤임이 밝혀졌다. 금관·금제허리띠·마구류를 비롯하여 각종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경주 황남리 무덤들은 현재 땅 위로 봉분이 남아있는 것은 20여 기이지만, 땅 속에 작은 무덤들이 무수히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일부이지만 독무덤(옹관묘) 등 여러 가지 형식의 무덤이 섞여 있어 신라 무덤 양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나타납니다.(다음 지도 스카이뷰에서 캡처)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황남대총 남분 은관(皇南大塚南墳 銀冠.보물  제631호.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은관이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 은관은 남쪽 무덤 널(관) 밖 머리쪽 껴묻거리 구덩이(부장갱)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높이 17.2㎝, 머리띠(대륜) 너비 3.2㎝, 지름 16.6㎝이다. 머리띠 위의 장식은 3개의 가지가 있는 형식으로 신라시대 관모(冠帽)에서는 보지 못하던 특이한 양식이다. 중앙가지는 위에 돌기가 있고, 활 모양으로 휘어지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마름모 형태의 은판을 붙였다. 좌우에는 반달형 은판을 붙이고, 바깥쪽을 일정한 폭으로 오려낸 다음 하나하나 꼬아서 새털 모양을 만들었다. 새털 모양의 가지는 신라 금관 형식에는 없었던 것으로, 의성 탑리 무덤에서 이와 유사한 관모가 발견되나 경주지역에서는 처음 발견된다. (문화재청 자료)

 

 금동신발

 

황남대총 남분(왕의 부장품)

 

 

 

 

 

 

 

 

 

 

 

 

 

 

 

 

 

 

 

 

 

 

 

 

 

황남대총 천마총 등 4∼6세기의 경주 고분에서는 모두 25점의 유리그릇이 출토됐다. 이 유리그릇들 가운데엔 로만 글라스뿐 아니라 페르시아에서 만든 ‘페르시안 글라스’도 있다. 동부 지중해의 유리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신라 땅으로 들어온 것이다. 유리는 세월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는다. 깨지지만 않는다면 영원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유리는 신라인, 특히 지배층을 매료시켰다. 유리그릇은 그렇게 지배층의 상징물이 되었다. 봉수형 유리병의 금실이 이를 극명하게 말해준다. 이 유리병을 보면 훼손된 손잡이를 금실로 감아 보강해 놓았다. 생전에 유리병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기에 금실로 유리병 손잡이를 보강했단 말인가. 당시 신라의 지배층은 금이나 보석보다 유리그릇을 더 귀하게 여겼다.

 유리제병및배<98호남분>(琉璃製甁및杯<九十八號南墳>.국보  제193호)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병 1점과 잔 3점의 유리제품이다. 병은 높이 25㎝, 배지름 9.5㎝이고, 잔① 높이 12.5㎝, 아가리 지름 10㎝ 잔② 높이 8㎝, 아가리 지름 10.5㎝ 잔③ 높이 10.5㎝, 아가리 지름 9.5㎝의 크기를 하고 있다. 병은 연녹색을 띤 얇은 유리제품으로 타원형의 계란 모양이다. 물을 따르기 편하게 끝을 새 주둥이 모양으로 좁게 오므렸다. 가느다란 목과 얇고 넓게 퍼진 나팔형 받침은 페르시아 계통의 용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목에는 10개의 가는 청색 줄이 있고, 아가리에는 약간 굵은 선을 돌렸고, 손잡이에는 굵은 청색 유리를 ㄱ자로 붙였다. 손잡이에는 금실이 감겨져 있었는데 이는 무덤에 넣기 전에 이미 손상되어 수리를 한 듯 보인다. (문화재청 자료)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皇南大塚南墳 金製頸飾.국보  제194호 )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길이 33.2㎝의 금 목걸이이다. 황남대총은 남북으로 2개의 봉분이 표주박 형태로 붙어 있는데, 남쪽 무덤에서 사람의 목에 걸린 채로 널(관) 안에서 발견되었다. 금실을 꼬아서 만든 금 사슬 4줄과 속이 빈 금 구슬 3개를 교대로 연결하고, 늘어지는 곳에는 금으로 만든 굽은 옥을 달았다. 경주지역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목걸이가 푸른빛의 옥을 사용한데 반하여 전체를 금으로 만든 특이한 목걸이이다. 금 사슬, 금 구슬, 굽은 옥의 비례와 전체적인 크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우아하고 세련된 멋을 풍기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남분(부장품 수장부)

 왕의 목관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皇南大塚北墳 琉璃盞.보물  제624호)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유리제 잔(배)이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 잔은 높이 7㎝, 아가리 지름 10.5㎝로 북쪽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아가리 부분은 수평이 되도록 넓게 바깥쪽으로 벌어졌고, 몸통 부분은 밥 그릇 모양으로 밑이 약간 넓어진다. 아랫부분에는 우뚝한 받침이 있는데, 짧은 목을 거쳐서 나팔형의 굽이 달렸다. 유리는 투명한 양질이고 갈색으로 전체에 걸쳐 나뭇결 무늬가 있다. 받침 바닥에 약간의 손상이 있는 외에는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었다.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여러가지 종류의 유리제 용기가 발견되었지만, 이러한 작품은 처음 보는 독특한 예이다. 잔의 모양이나 무늬로 보아 신라 제품이 아니고 서방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9문화재청 자료)

 

 

 

황남대총 북분 은잔(皇南大塚北墳 銀盞.보물  제627호 )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 되었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 은제잔은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신라 잔 모양의 그릇으로 높이 3.5㎝, 아가리 지름 7㎝의 크기이다. 밑이 평평한 잔으로 표면의 장식 무늬가 매우 특이하다. 아가리에 좁은 띠를 두른 뒤, 연꽃을 겹으로 촘촘하게 돌려 무늬를 장식하고, 그 밑으로는 쌍선으로 거북등 무늬를 연속시켰다. 거북등 안에는 각종 상상속의 동물 형상을 새겼다. 바닥 안 쪽 중앙에도 꽃무늬 안에 봉황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무늬의 표현 형식과 동물의 형상은 경주 식리총에서 출토된 장식용 신발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무늬 자체는 중국 한나라 시대의 구리 거울과 연관이 있으나, 그 분명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문화재청 자료)

 

 

 

청동초두

 

 

 

 

 

 

 왕비의 목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皇南大塚北墳 金冠.국보  제191호 )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금관이다. 신라 금관을 대표하는 것으로 높이 27.5㎝,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수식) 길이는 13∼30.3㎝이다. 이마에 닿는 머리띠 앞쪽에는 山자형을 연속해서 3단으로 쌓아올린 장식을 3곳에 두었고, 뒤쪽 양끝에는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2곳에 세웠다. 푸른 빛을 내는 굽은 옥을 山자형에는 16개, 사슴뿔 모양에는 9개, 머리띠 부분에 11개를 달았다. 또한 원형의 금장식을 균형있게 배치시켜 금관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였다. 아래로 내려뜨린 드리개는 좌·우 각각 3개씩 대칭으로 굵은 고리에 매달아 길게 늘어뜨렸다. 바깥의 것이 가장 길고, 안쪽으로 가면서 짧아진다. 장식 끝부분 안쪽에는 머리띠 부분과 같은 푸른색 굽은 옥을 달았고, 바깥쪽에는 나뭇잎 모양의 금판을 매달았다. 발견 당시 금관과 아래로 내려뜨린 드리개들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 금관은 신라 금관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어느 것보다도 굽은 옥을 많이 달아 화려함이 돋보이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皇南大塚北墳 金製銙帶.국보  제192호 )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의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금 허리띠(과대)와 띠드리개(요패)이다. 황남대총은 남·북으로 2개의 봉분이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있다. 과대는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인 허리띠로서 길이 120㎝, 띠드리개 길이 22.5∼77.5㎝이다. 28장의 판(板)으로 만들어진 이 허리띠는 주위에 있는 작은 구멍들로 미루어 가죽같은 것에 꿰매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허리띠 아래에 매달려 있는 13개의 띠드리개는 경첩으로 허리띠와 연결하였다. 이 허리띠와 띠드리개는 출토될 당시 상태가 아주 좋아서, 착용법과 띠드리개의 배치순서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왕비의 목관

 

 

띠끝꾸미개에 부인대(夫人帶)라고 새긴 글자가 있어서 여성으로 판명됐다.

 

 

 

 

 

 

 

 

 

 

 

 

 

 

 

 

 

 

 

 

 

 

  

국립경주박물관 바로가기 ;

http://gyeongju.museum.go.kr/

국립문화재연구소 영상자료관 유적발굴  황남대총 바로가기

  http://www.nrich.go.kr/kr/mmulti/mContentV.jsp?ca_id=1&arc_id=147&arc_datatyp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