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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구미

천생산(天生山) 과 천생산성(天生山城)

노촌魯村 2011. 10. 1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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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천생산 정상으로 가는 입구의 출렁다리

 

 

천생산성

천생산성은 천생산(天生山, 해발 407m) 정상 주위 8∼9부 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다. 인근의 금오산성(金烏山城)과 가산산성(架山山城)과 더불어 영남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산성이다. 비슷한 형태인 두 개의 산봉우리를 이용하여 내성과 외성으로 나누어 축조했으며 내성의 길이는 약 1,300m, 외성은 약 1,320m 정도이다. 마을에서는 외성을 '외밭'으로 부르고 있는데, 내성에 공급하는 농작물의 경작, 군마의 방목, 군사 훈련장 등으로 이용된 보조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내성은 인근 주민의 피난 및 전투 등의 목적을 가지고 축조된 것으로 군사 및 군마를 위한 우물, 못, 건물, 장대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찾아가는 길

구미역(구미버스터미널)에서 인동방향, 구미대교를 지나 계속 직진 후 6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하여 황상동 이주단지, 구미정보고등학교, 검성지를 경유해 가는길과 구미대교를 지나 계속 직진 후 4번째 신호등에서 우회전하여 천평방향으로 가다가 구평동의 세월지 (저수지)아래, 천용사(天龍寺) 또는 천생산 산림욕장을 통해 올라가는 길이 있으며, 또한, 장천면 신장리 쌍용사(雙龍寺)를 거쳐 올라가는 길도 있다.

 

 

천생산성 (天生山城.경상북도 기념물 제12호. 경북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 산42-2외 11필 )

경상북도 구미시 장천면 해발 407m의 천생산의 정상에 있는 이 산성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고 전한다.
곽재우(1552∼1617) 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운 곳으로 임진왜란 때 왜적이 성을 포위하고 물을 끊자, 곽재우는 성벽 끝에 흑마를 세우고 엉덩이에 쌀알을 붙여 말을 씻는 시늉을 했다. 이 쌀알이 빛에 반사되어 물방울로 보이자 왜적이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이 산성은 둘레가 1㎞를 넘으며 험준한 암벽의 사이를 돌로 이어 쌓아 우리나라 특유의 산성 형식을 띠고 있다. 산성 내에는 무기고, 군정, 우물하나와 연못 2개가 남아 있다. 지금의 성벽과 문터는 임진왜란으로 성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선조 29년 현감 이보에 의해 고쳐졌고, 선조 34년(1601)과 37년(1604)에도 관찰사 이시발에 의해 보수되었다.
삼국시대의 산성양식을 간직하고 삼국시대 무덤들이 있어 처음 쌓았던 연대를 삼국시대로 볼 수 있다.(문화재청 자료)

거북바위

 

 

 

 

천생산성(天生山城), 미덕암(米德岩)의 전설(제일 높은 바위

인동의 구읍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4km되는 지점에 사방이 자연 석벽으로 된 절험의 산이 있으니 이 산이 바로 천생산성이다. 이 산의 서쪽에 불쑥 튀어 나온 큰바위가 자리 잡고 있으니 >의 천생산성조에 의하면 밀득암(密得岩)이라 한다. 근세에 이르러 미덕암이라 부르고 있으니 이는 쌀(米)의 덕을 보았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천생산성은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세칭 홍의장군이라 불리워진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가 의병을 모아 천생산성에 집결시켜 왜적과 싸웠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산성은 천연적으로 깍은 듯이 험준하게 생긴데다가 곽장군의 신출귀몰한 전법으로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요새지로서 왜군이 아무리 공격해도 함락할 수가 없으므로 공격에 지친 그들은 한 계략을 쓰기로 작정하였다. 왜군은 인근 민가에 내려가서 저 산성에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물이라고 하였다. 이 귀중한 정보를 탐지한 왜군은 이 산 기슭에다 큰 못을 파니 산위의 샘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산성 안에서는 식수가 적어서 큰 고난을 겪었지만 이에 홍의장군은 굴하지 않고 기발한 계책을 세워 이 산성에 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왜군에게 보이기로 계획을 꾸몄다. 홍의장군은 밀덕암 바위 끝에다가 백마를 세우고 말 등에다 쌀을 주르르 부으면서 말을 씻는 모습을 하였더니 멀리서 바라보는 왜군은 마치 물로써 말을 씻고 있는 것같이 보였던 것이다. 이 것을 바라 본 왜군들은 자기들이 정보를 탐지한 것과 달리 산성에 물이 많아서 말까지 씻기니 공격을 단념하고 물러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 내고장전통가꾸기(구미시)

 절벽 부분에 설치 된 계단

절벽 부분에 설치 된 계단

미덕암의 절벽

미덕암의 절벽

미덕암 정상

미덕암 정상 부분에 있는 남현(南峴) 글씨

 

 

 

          

    

천생산성 유래비     

 

천생산성 유래비

깃발을 세운 자리

기와편

깃발을 세운 자리

미덕암

못(저수지)

천생산성 성벽 

천생산성 성벽  

천생산성의 성벽과 수구

천생산성문

 

동쪽에서 보면 하늘 천(天)자로 보이고 정상이 일자 봉으로 생김새가 특이하여 하늘이 내려놓은 산이라 해서 천생산(天生山)이라고도 하고, 함지박을 엎어 놓은 것 같다 하여 방티산, 병풍을 둘러친 것 같다 해서 병풍바위라고도 부른다. 구미시 장천면 일대에서는 천생산성을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는 전설 때문에 혁거산이라고도 부른다.

미덕암에서(고대운교장.박해덕교장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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