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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천

임고서원 (臨皐書院)

노촌魯村 2012. 7. 9.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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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고서원 (臨皐書院.경상북도 기념물 제62호.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462외 21필)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정몽주(1337∼1392)는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정승 자리에까지 오른 문신이다. 왜구 토벌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당시 긴장상태에 있던 명나라에 건너가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로 불리며 시와 글, 그림에도 탁월했다. 특히 시조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그의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조선 태종)이 살해하였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지었으며, 이 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인조 21년(1643)에는 여헌 장현광을, 영조 3년(1727)에는 지봉 황보인을 추가로 모셨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으나 1965년에 정몽주의 위패만을 모시고 복원하였다.(문화재청 자료) 

  

  

  

 

 

 

 

 

 

 

 

 

 

    

 

    

선죽교 옛 사진(일제시대)

 

   

   

 

 

 

 

 

 

 

 

 

 

 

 

   

 

 

 

 

 

 

 

 

 

 

 

 

 

 

 구(舊)서원

 

 

 임고서원은행나무 (臨皐書院銀杏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63호.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161)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임고서원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20m, 둘레는 5.95m에 이른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져 있으며, 나무가 자라나는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본래 이 나무는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을 당시 그곳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나,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없어진 임고서원을 1600년경 이곳에 다시 지으면서 은행나무도 옮겨 심은 것이라고 한다. 임고서원의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계현재(啓賢齋)

계현재는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507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은선생의 선고이신 휘 운관공(云瓘公)의 제향을 모시는 재실이다. 숙종조에 후손 익이 삼도통제사에 부임하였을 때 임고서원 내 별고(別庫)를 두어 묘제향사를 올리다가 1751년에 후손 찬술공이 어영대장총계사 때에 쌀 40석을 출연하여 일성군 재사를 별묘(別廟=계현재)로 지어 묘제로 봉향하게 되었다. 그 후 기존 재실이 퇴락하여 재건축이 불가피하여 종약원에서는 11평의 건물을 철거하고 대지 385평을 매입 정지한 후 전통한식 목조 한옥 17.64평, 삼문 2.04평, 화장실 4.56평, 담장, 석축 등을 문화재 전문위원의 자문을 받아 종약원 자체자금 3억9천70만원으로 2005.10.25일 준공하였다.

 

임고서원 부근의 스카이뷰

 

임고서원 -(1.4km)- 부래산 -(1.4km)- 포은선생유허비(효자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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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래산(포은 정몽주선생의 서원이 있었던 곳)

         

■ 향토자원의 현황 및 전설

고천리의 부래산은 주변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포은 정몽주선생의 서원이 있었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서원이 손실되어 현 임고서원 자리로 이전하여 건립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해 7월 붕어같이 생긴 작은 산이 운주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별안간 천지가 진동하는 벼락이 치고 소나기가 내려 산이 홍수에 떠내려 오다가 마을 아낙네가 그것을 발견하고 “저기 산이 떠내려 온다!”는 말에 산이 멈추어 선 곳이라 하여 부래산이라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산중턱에 있는 묘소는 포은 선생의 방손의 묘소이며 포은 선생의 태생지와 인접한 곳으로 선생의 얼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 부래산이 자리한 고천리에 대한 유래

고천리는 지금부터 약600여년전 고려말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고천리의 동쪽 약2km지점에 위치한 고내, 고냇골은 고천리에서 가장 안 골짜기에 있으며 10가구 미만의 각 성이 살고 있다. 그리고 고천리 남서쪽의 고냇골 입구에 위치한 장동, 長才는 골이 기다란 동네이며, 동래 정씨가 많다. 오래 전부터 마을 앞으로 운주산골짜기의 맑은 물이 흘러 고천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해 7월 붕어같이 생긴 작은 산이 운주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별안간 천지가 진동하는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려 이 산이 홍수에 떠내려와 현재의 고천동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연맥(連脈)이 없이 이 산만이 외로이 우뚝 서 있으므로 부래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고천과 장제로 되었다.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넓게 분포하여 논농사가 주로 행해지는 곳이다. 마을 서편으로 작은 하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고천, 서원, 부래산, 장개, 방목골마을 등이 있다. 고천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서원마을은 고천서원이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래산마을은 큰 내 사이에 있어 마치 물에 떠내려 온 것 같다는 산 밑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장개 마을은 큰 냇가가 된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방목골마을은 전에 소를 놓아 먹이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향토자원 자료)

포은정몽주유허비(圃隱鄭夢周遺墟碑)

  

  

  

포은정몽주유허비(圃隱鄭夢周遺墟碑. 유형문화재 제272호.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044-5번지)

이 비는 고려시대의 문신이며 학자이자 삼은(三隱)의 한사람인 정몽주(1337-1392)선생의 출생지에 세운 유허비이다. 고려공민왕(1355) 부친상을 당하여 묘소에서 3년상을 지내고 그 후1365년 11월에 모친상을 당하여 역시 묘소에서 3년상을 지냈다. 그의 지극한 효성이 조정에 보고되어 그의 출생지인 우항리에 ‘효자리’라 세긴 비가 영천군수 정유에 의해 공양왕 원년(1487)경상감사 손순효의 현몽에 의하여 잃었던 비를 땅 속에서 찾아내어 다시 세우고 비각도 함께 건립하였다. (영천시청 자료)

정몽주(鄭夢周 1337-1392) : 지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관향은 영일, 임고면 우항리에서 운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세에 진사(進仕)가 되었고, 24세에 문관에 올라 공민왕때에 성균관 학감(學監)이 되어 학문에 전력, 주자가례를 본받아 조상을 모셨고, 또안으로 5부 학당을 세워 후진을 가르치며, 밖으로 향교를 베풀어 유학을 크게 진흥하여 성리학의기초를 세웠다. 명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갔으며, 내정, 외교, 교육등에 공적이 많았는데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등에 의하여 선지교에서 피살되었다. 문집으로 포은집이 있으며, 그의 굳은 충성을 읊은 시조 단심가가 전한다.(영천시청 자료)

포은 정선생지려 현판

  

  

비각의 현판

  

  

임고서원에서 본 새끼 뻐꾸기와 어미새

뻐꾸기 : European cuckoo라고도 함. 두견목(杜鵑目 Cuculiformes) 두견과(杜鵑科 Cuculidae)에 속하며 한국 전역에 찾아오는 흔한 여름새.

머리·턱·등은 청회색, 멱과 윗가슴은 회색, 배는 흰색에 짙은 회색의 가로무늬가 있다. 드물게 보이는 갈색 암컷의 등은 검은색 띠무늬가 있는 밤색이며, 아래쪽은 검은색 띠무늬가 있는 붉은빛 도는 담황색이다. 산란기는 5월 하순에서 8월 상순이며, 다른 새(개개비·멧새·노랑때까치·붉은뺨멧새 등)의 둥지마다 1개씩 알을 낳아 새끼 키우는 일을 맡긴다. 10~12일쯤 지나 먼저 부화되어 다른 알들을 밀어내고 1~2일 만에 둥지를 독점하여 20~23일간 다른 새의 먹이를 받아먹고 자란 후 둥지를 떠난다. 둥지를 떠난 후에도 7일 이상이나 먹이를 받아먹는다. 한 개체의 암컷이 12~15개의 알을 12~15개의 둥지에 낳는다. 뻐꾸기류는 주로 곤충을 먹으며, 특히 송충이 등 모충(毛蟲)을 즐겨 먹을 수 있도록 위벽이 발달했다.(출처 : 브리태니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