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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국우동 탱자나무 (國優洞탱자나무)

노촌魯村 2012. 10. 23. 18:46

국우동 탱자나무(國優洞 탱자나무.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0호)

국우동 탱자나무(國優洞탱자나무.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0호.대구 북구 도남길 45-7(국우동))  

탱자나무는 주로 경상·전라도 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극우동의 배종현씨 집 뒤뜰에는 옛날 울타리로 심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탱자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의 나이는 400년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며, 세 그루 중 서쪽 언덕의 탱자나무는 지면 가까이에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졌는데 밑둘레가 1.7m에 이른다. 맨 동쪽에 서 있는 탱자나무는 높이 0.7m, 밑둘레 1.4m이고, 가지는 동남쪽으로 뻗어 자라고 있다. 극우동의 탱자나무는 다른 천연기념물이나 기념물에 뒤지지 않는 크기와 수령의 것들로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맨 동쪽에 서 있는 탱자나무는 높이 0.7m, 밑둘레 1.4m이고, 가지는 동남쪽으로 뻗어 자라고 있다.

 

 

 

보경사 탱자나무(寶鏡寺 탱자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1호 )

 보경사의탱자나무(寶鏡寺의탱자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1호 )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보경사의 탱자나무는 보경사 경내 천왕문 우측 동편 종무소를 사이에 두고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 대웅전 쪽의 나무는 지상 160㎝ 위치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원형으로 왕성하게 자라고 있으며, 맞은편의 나무는 지상 40㎝ 위치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탱자나무로는 보기 드물게 오래된 것으로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江華甲串里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8호)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江華 甲串里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8호.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16)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강화도 역사박물관 옆에 서 있는 갑곶리의 탱자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2.12m이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가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 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도는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어서, 탱자나무를 처음 심었을 때 조정에서는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보고하게 하였다고 한다.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자료)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江華 砂器里 탱자나무)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江華 砂器里 탱자나무.천연기념물 제79호.인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135-10)

탱자나무는 주로 영·호남지방에 분포하며 일본·중국에서도 자란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나무는 중국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열매와 껍질은 약재로 사용되며 줄기에 가시가 나 있어 과수원 울타리용으로 적합하다.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의 나이는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3.56m, 뿌리부분 둘레 2.2m이다. 가지의 굵기로 미루어 볼 때 매우 컸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현재 대부분 가지가 죽고 동쪽 가지만 살아 있다. 강화도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몽고의 침입을 피해 있었던 곳이며, 조선 인조(재위 1623∼1649)도 정묘호란(1627) 때 난을 피했던 장소이다. 이 때 외적을 막는 수단으로 강화도에 성을 쌓고, 성 바깥쪽에 탱자나무를 심어서 외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탱자나무는 그 때 심은 것이 살아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강화 사기리의 탱자나무는 우리 조상들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심은 국토방위의 유물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江華 甲串里 탱자나무)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