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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안동

공민왕 친필 ‘안동웅부(安東雄府)’ 현판. 안동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노촌魯村 2013. 9. 2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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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친필 ‘안동웅부(安東雄府)’ 현판. 안동민속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1361년 홍건족의 침입을 받은 고려 조정은 당시 안동대도호부로 피신할 것을 공민왕에게 건의했다. 이에 왕은 안동의 왕피천을 건너 다행히 안동으로 넘어와 홍건족의 공격으로부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당시 왕은 이곳에서 ‘安東雄府(안동웅부)’라고 쓴 친필 현판을 내렸다.

여기서 ‘웅부(雄府)’라는 단어의 선택이 눈길을 끈다. 당시 안동의 행정적 위상은 안동대도호부였다. 만약 이를 그대로 썼다면 ‘안동대도호부’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왕은 굳이 ‘안동웅부(安東雄府)’라는 단어를 썼다. 불교에서 최고 숭배의 대상인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건물이 ‘대웅전’이다. 불교국가인 고려의 왕이 ‘웅’자를 사용해 ‘웅부’라고 편액 글씨를 써서 도호부 관아에 내린 것은 왕의 각별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민왕은 안동이 자신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고 당시 안동부민이 각별한 환대를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공민왕은 개경에 도착한 후에도 안동을 잊지 못해 ‘안동이 나를 일으켰다(此安東我重興)’고 술회하기도 했다

안동도호부 관아에 걸려있던 ‘안동웅부’ 현판은 그 후 안동군청에 걸려있다가 1998년 안동민속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지금 안동시청에는 그 복제품이 걸려있다. 현판 ‘안(安)’자 옆에는 고려공민왕이 쓴 보배로운 붓글씨라는 의미의 ‘여공민왕보묵(麗恭愍王寶墨)’이라는 글자가 작게 쓰여 있다.

  

안동민속박물관

안동민속박물관 장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