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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내장사(內藏寺)

노촌魯村 2015. 11. 3. 04:25


위치 :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내장동 590)

내장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백제 제30대 무왕(600-640)37년인 서기 636년(백제멸망 660년24년 전)에 당시 도승이신 영은조사께서 지금의 절 입구 부도전 일대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웅전등 50여동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 란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098(고려조 숙종3년) 행안선사께서 전각당우를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 자세한 연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557년(조선조제13대 명종12년) 희묵대사가 법당과 요사를,1639년 (인조17년) 부용대사가 사우를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했으며,1779년(정조3년) 영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다.

1923년 백학명 선사가 사세를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 등을 신. 개축하여 현 위치에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1951년1월12일 소실된 것을 마지막으로 창건이래 5화 7건으로 역사가 있다. 1957년 주지 야은스님께서 요사,1958년에 현대웅전을 중건하였다.1964년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과 탱화를 조성 봉안 하였다.

그 후 1974년 국립공원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왕문이 신축되었다. 조선조 성종 때 석학 성임(1421-1484)은 정혜루기에서 영은사는 고려말엽 지엄선사의 개산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한 뒤, 정혜루는 당시 영은사의 문루로 1467년(세조12년)에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칸으로 그 규모나 형태가 장엄무비하다고 전하고 있다.

최근 내장사는 향적원과 정혜원, 요사 등을 신축하고 1994년 10월에는 사리탑을 건립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원래 내장산에는 명찰 영은사가 있었으니 영은사는 지금의 부도전 위치에 있었다. (출처:내장사)


천왕문(天王門)



삼층석탑



정혜루



대웅보전

*2012년 11월 1일 새벽 2시 10분께 전북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에서 불이나 2시간 여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내장산 대웅전(89㎡)이 전소했고, 불상 1점과 불화 3점 등도 불에 탔다. 복원불사 진행 중인 2015년11월3일의 모습

대웅보전 불상

극락전


관음전

관세음보살

내장사조선동종(內藏寺朝鮮銅鐘.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9호. 전북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총 높이 80㎝, 몸체 길이 60㎝, 입 지름 50㎝로, 소형이나 명문이 확실한 조선 후기 범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입 주변에는 한개의 덩굴무늬 띠를 둘렀으며, 어깨 부위에는 덩굴무늬 띠와 물결무늬 띠가 잇대어 배열되어 있다. 어깨 아래로는 2줄로 만든 작은 원 안에 범자를 도들새김 하였으며, 24개의 원을 배열하여 문양을 만들었다. 몸체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유곽을 4개 두고 안에는 9개의 유두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유곽을 만든 띠는 덩굴무늬로 채웠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상을 양각하였다. 몸체의 맨 윗부분에는 꽃을 세워 장식한 듯한 문양이 있다.

이 동종은 내장사가 중건되자 전남 보림사에서 옮겨 왔는데, 일제시대 후기에 원적암에 은닉하였고, 한국전쟁 때 정읍시내 포교당에 피난시켜 보전하였다.(출처:문화재청)


명부전(지장보살)



삼성각


 

내장사 오층석탑

내장사와 원적암 사이에 있는 돌 기둥

원적암(정읍시 내장산로 1358 (내장동))

불출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며, 고려 선종3년(1086) 적암대사의 창건이라 하는데 연혁이 분명치 않다. 이곳에는 인도로부터 들여온 유명한 상아(옥돌이라고도 함)로 만든 반상(槃像)이 머리를 북으로 하고 서쪽을 향해 누워있는 자그마한 와상(臥像)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하나밖에 없어 유명했으며 원적암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국 북경 와불사의 와불(臥佛)과 비교할 정도였는데 1910년 일본인에게 도난당하였다고 한다.

원적암은 7칸의 웅대한 암자였는데 6·25병화로 소실되어 그후 10년만에 법명(法明)이 조그마한 암자로 복구했다. 이곳은 옛날부터 원적모종(圓寂慕種)과 비자림으로 유명한데, 동쪽 기슭 하늘을 덮고있는 비자림의 장엄한 광경은 가을단풍과 아울러 내장산의 대표적인 경관이다.


원적암 대웅전(내부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음)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여래께서 출타(?)하시고 관세음보살께서 법당을 지키고 계시다

내장사 원적암의 관세음보살

 





원적암과 벽련암 사이의 너덜겅으로 만들어진 사랑의 다리(길)






벽련암(정읍시 내장산로 1220-74 (내장동))

서래봉 중봉 330m 고지에 있었으며 원래 내장사란 이름으로 일컬었는데 근세에와서 영은암(현 내장사)을 내장사로 개칭하고 이곳은 백련암(白蓮菴)이라 이름하였고 나중에 벽련암(碧蓮菴)으로 고쳐쓰게 되었다. 그후 현 내장사와 구분하기 위해 김창한(金彰漢,정읍군수 역임)이 "고내장(古內藏)"이란 서액을 걸고 이 일대를 고내장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옛날에는 주사(主寺)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백제 의자왕 20(660년) 환해선사(幻海禪師)의 창건으로 1925년 백학선사(白鶴禪師)가 본전이 극락보전과 요사를 중건하고 선당(호상소림)을 세 웠는데 6·25병화로 1951년 소실되었다.

일찍이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백련암(白蓮菴)"을 벽련암(壁蓮菴)"으로 개칭할 것을 권하고 서액을 써 걸은 사실이 있는데 6·25사변때 소실되었다. 서편에는 연대 미상의 석종부도 1좌가 있으며 뒤편의 암벽 에는 이 고장 출신의 여류명필 몽련당(夢蓮堂) 김진민의 「석란정(石蘭亭)」이란 각자가 새겨져 있다.

벽련암 석축대를 쌓을때 전해져온 전설에 의하면 희묵대사가 서래봉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수제자 희천(希天)이 이를 받아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이곳은 1986년 당국의 복원계획에 의하여 중건되었고 현재 복원이 진행중이다. 이 곳 고내장(古內藏)은 내장산 제일경(第一景)으로 일컫는 명소로 오봉 김제민(鰲峰 金薺旼)이 춘경(春景)을 읊은 천불전(千佛殿)의 위치가 고내장으로 추측된다. 백련사가 언제 백련암으로 격하되었는지 알 수 없다.


 


벽련암 대웅전




 


벽련암 천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