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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다솔사 대양루(多率寺大陽樓)

노촌魯村 2017. 3. 1. 22:24



다솔사대양루(多率寺大陽樓.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경남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용산리))

와룡산 기슭에 있는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4년(503)에 연기조사가 처음 짓고 영악사라 하였다. 선덕여왕 5년(636)에 절을 늘려 짓고 다솔사라고 부르다가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영봉사라 하였다. 경문왕(재위 861∼875) 때 도선국사에 의해 다시 다솔사로 부르게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여러 번 고쳐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숙종 6년(1680)에 다시 지었다. 지금 남아있는 대양루는 영조 24년(1748)에 지은 것이다.
대양루는 다솔사의 본전인 대적광전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 2층 누각으로, 신도들에게 설법을 하고 절의 행사 때 사용하는 도구나 그릇을 보관하기도 한다. 보통 절의 누각은 윗층은 마루·아랫층은 문으로 이용하는데, 대양루는 왼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앞면 5칸·옆면 4칸의 규모이며,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으로 방풍판을 달았다. 대적광전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나 좌우 양쪽과 뒷쪽에 벽을 설치하여 막았고, 뒷쪽에는 문을 달아 밖의 경치를 내다볼 수 있도록 하였다. 앞마당과 누각 마루는 떨어져 있고 오른쪽 퇴칸 앞으로 돌다리를 걸쳐 출입하고 있다.
다솔사 대양루는 매우 견실한 느낌을 주는 누각건물이다.(출처:문화재청)


1749년(영조 25)에 세워져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2층 맞배집으로 건평이 106평에 이르는 규모가 큰 건축물입니다.

다솔사는 흔히 곤양 다솔사로 많이 알려져 왔으나 사실은 곤명면 용산리에 자리한 고찰이다. 대양루는 다솔사 경내에 있는 큰 누각으로써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이후 7년 동안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했듯이 다솔사도 병화를 입고 폐허화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10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절을 다시 이룩함)로 크게 중흥하였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재앙을 겪었다.
그리하여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 스님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과 대양루사왕문을 중건했다. 그런데 1914년 12월에 또 한번의 대화로 모든 전각이 불타는 불운을 겪었으나, 이 때 유독 대양루만은 그 화를 면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누각은 맞배지붕의 2층으로 된 목조 기와 지붕으로서 높이가 13m나 되며 36개의 아름드리 큰 기둥이 무거운 몸체를 떠받치고 있다. 처음 건축 당시에는 사왕문이라 하여 아래층은 출입문 구실을 하였으나 뒤에 건물 왼편에 돌계단이 새로 생기면서 지금은 칸막이로 창고와 기타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1974년 2월 16일 도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후 건물이 오래되어 몸체가 비스듬히 기울기 시작했는데, 1986년 8월 수리하였으나 다시 몸체가 기울어져 1999년 번와(기와를 교체)와 보수를 대대적으로 실시하여 2001년 4월 보수를 마무리하였다.(출처:사천시청)

다솔사대양루(多率寺大陽樓) 2층은 다솔사차(茶)전시관으로 사용되고있습니다.

만해 한용운과 소설과 김동리 등 다솔사와 인연을 맺은 분들의 자료와 함께 반야로차로 유명한 다솔사의 차와 다기들을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