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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청풍 망월산성(堤川 淸風 望月山城)

노촌魯村 2018. 4. 29. 12:18


망월산성은 청풍나루 뒤편, 즉 청풍문화재단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제천 청풍 망월산성(堤川 淸風 望月山城. 시도기념물 제93호. 충북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산6-2번지 외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에 있는 해발 373m의 망월산 정상을 돌로 둘러쌓은 작은 성으로, 둘레는 495m이다.‘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무왕 13년(673)에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본래 청풍은 고구려의 사열이현이었는데, 신라에 귀속되어서는 경덕왕 16년(757)에 청풍현으로 고쳐져서 내제군으로 개칭한 제천의 영현이라 한 것으로 보아 사열이현시대에 이 성이 쌓아진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성벽은 서남면에 너비 16m, 높이 3m와 남쪽에 너비 15m, 높이 4.6m가 완전한 모습으로 잘 남아 있다.(출처 : 문화재청)


제천 청풍 망월산성의 축조 시기나 사용 기간에 대해서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지표 조사 때 드러난 축조 방법과 수습 유물을 통해 볼 때, 삼국 시대에 축성된 주변 지역의 산성들과 축조 방법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고, 유물 또한 삼국 시대의 것으로 편년되는 것들이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한강 유역의 청풍 지역을 둘러싼 삼국의 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천 청풍 망월산성은 해발 373m의 망월산 정상부에 있으며 전체 둘레는 495m 가량이다. 1994년 충북대학교 호서문화연구소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산성의 개략적인 현황이 파악되었으나 축조 시기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1994년 6월 24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제천 청풍 망월산성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둘레가 250칸으로 석축의 벽이 곳곳에 남아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 후 『문화유적총람』에서는 망월산성을 사열이산성 또는 성열성이라 하였으며,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문무왕조에 671년(문무왕 13) 사열산성(沙熱山城)을 더 늘려 쌓았다는 기록을 토대로 하여 망월산성은 삼국 시대에 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사열’은 청풍의 고구려 때 지명인 ‘사열이현(沙熱伊縣)’을 의미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다른 문헌 기록을 살펴보면, 청풍 망월산성이 있는 망월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성황산(城隍山)이며,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호서읍지(湖西邑誌)』에 보이는 태산(台山)으로 『충청도읍지』의 ‘고성지(古城址)’, 『호서읍지』의 ‘사열고읍(沙熱故邑)’이라는 기록과도 일치하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 제천 청풍 망월산성이 ‘사열산성’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단정하기 어렵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천 청풍 망월산성의 축조 시기나 사용 기간에 대해서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지표 조사 때 드러난 축조 방법과 수습 유물을 통해 볼 때, 삼국 시대에 축성된 주변 지역의 산성들과 축조 방법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고, 유물 또한 삼국 시대의 것으로 편년되는 것들이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한강 유역의 청풍 지역을 둘러싼 삼국의 경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천 청풍 망월산성의 둘레는 성벽의 성내를 도는 소로를 기준으로 하면 477m이며, 잔존한 축석부를 기준으로 한 둘레는 502m이다. 성벽의 바깥 면은 대체로 전형적인 수평 쌓기로 축조되었다. 즉 사암과 결절을 이룬 석회암재의 석재를 세장방형 모양으로 하여 수평으로 엇물려쌓기를 하였고, 벽면은 거의 수직에 가깝게 쌓았다. 또한 외벽 면 안쪽 하단에서 별도의 보축이 확인되지 않았고, 안쪽은 석재를 채우되 수평 엇갈려 쌓기로 채운 다음 삭토한 토사를 채워 내환도상을 이루고 있다. 한편 북문지 주변에서는 계단식으로 축조한 성벽이 확인되어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성벽 안쪽으로는 환도상(環道狀)의 평탄면이 있는데 대부분 무너졌으나 산성의 남북 모서리에서 일부 잔존 성벽이 확인된다. 성벽 위에서는 상당량의 자갈돌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예는 남한강 유역의 온달산성, 공문성, 장미산성, 가은암산성 등에 보이는 특징으로 주목된다. 성벽에는 북문지로 추정되는 1개소가 확인되었고, 성내에는 4개의 건물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남한강이 회류(回流)하였으나 충주댐 건설로 수면이 높아지면서 지금은 청풍호가 보다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제천 청풍 망월산성은 한강 수로를 포함하여 조망이 양호한 요충지에 해당한다. 비록 정확한 축성 시기와 사용 기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고대의 축성 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성벽을 축조하는 데 사용된 계단식 축조 방식은 고구려와 백제에서 많이 사용된 방법이지만 성벽 대부분이 수직 벽면을 이루고 있어 신라 성벽의 특징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발굴 조사가 진행된다면 삼국 시대 축성 방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관수정觀水亭




 


망월정望月亭 


 




망월정에서 본 청풍문화재단지


망월산성(충청북도기념물 제93호)은 정상의 암반이 제단(망월정 아래 바위) : 성곽의 최고봉에서 제단으로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연리지





망월산성내의 손가락같이 생긴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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