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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성주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星州 法水寺址 三層石塔)

노촌魯村 2021. 4. 19. 14:58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星州 法水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1656호.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5-1번지)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애장왕(800~809년) 때 창건한 법수사지(法水寺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지는 가야산 계곡을 석축으로 단을 조성하여 자리 잡고 있다.

사역은 남북 150m, 동서 150m 정도이고 크게 세 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금당지로 추정되는 축대 아래에는 백운동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당간지주가 고목의 뿌리에 일부 쌓여 있다.

석탑의 높이는 5.8m이며, 상․하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린 양식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나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석탑은 규모가 작아지고 하층기단이 높고, 안상이 음각된 점 등의 9세기 후반기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5단인 점 등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사찰의 창건시기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 문화재청)

 

이 석탑은 신라 애장왕(800~809년) 때 창건된 법수사지(法水寺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지는 가야산 계곡을 석축으로 단을 조성하여 자리 잡고 있다. 사지는 주변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높은 위치에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전망이 아주 좋다.

대가람으로 전해지는 법수사(法水寺)는 임진왜란 이후 폐사(廢寺)되고 석탑과 금당(金堂)터의 거대한 석축,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경순왕의 계자인 김황(金湟)이 승려가 되어 법명을 범공(梵空)이라 하고 법수사에 머물면서 해인사에 드나들며 산승(山僧)으로 일생을 마쳤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사찰이 언제 어떻게 폐사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9개의 금당과 8개의 종각이 있는 거대한 사찰이었다고 『경산지(京山志)』 불우조(佛宇條)에 전한다. 석탑의 높이는 5.8m이며, 2중의 기단과 3층 탑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륜부(相輪部)는 없어졌다.

아래층 기단의 네 면에는 3구씩의 안상(眼象)을 조각하였고, 위층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다. 옥개석(屋蓋石)은 밑면의 받침이 5단이며, 네 귀퉁이가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작고 네모진 받침 위로 엎은 그릇모양의 장식만이 남아있다.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에 비해 규모가 작아지고 하층기단이 높고, 안상이 음각된 점 등 9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5단인 점 등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사찰의 창건시기에 조성된 탑으로 추정된다. 탑은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함께 법수사지의 제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우수한 조형미를 가지고 있어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크다.(출처 : 성주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