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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성주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星州甫月洞三層石塔)

노촌魯村 2021. 11. 18. 18:38

성주보월동삼층석탑(星州甫月洞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북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852번지)

무너져 땅 속에 파묻힌 것을 1979년에 복원해 놓은 석탑으로, 바닥돌 위로 2층의 기단(基壇)을 높직하게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본 떠 새겼다. 탑신부의 각층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의 경사는 비교적 느리게 흐르고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희미하게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인 양식이나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출처 : 문화재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탑안마을 위쪽에 신라시대 양식의 석탑이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석등의 연화대석, 장대석 등이 산재하고 있어서 상당히 넓은 사역을 이룬듯하다.

석탑은 원위치에 유존하고 있었으나 붕괴되었던 것을 1979년 12월에 복원하였다.

전체 높이는 5.1m이고, 지대석의 한변의 길이는 4.4m이다.

석탑의 양식은 2층 기단의 3층 석탑이고, 하기단의 각면에는 운주와 2개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상기단 역시 운주와 2개의 탱주를 모각하였다.

옥신은 운주 2개씩 을 각면마다 모각했으며 옥개는 5단 받침과 2단의 괴임을 각출했다.

추녀는 수평을 이루며 낙수면의 굴곡이 약하다.

상하기단의 각 면에 운주가 2개씩 있다는 것과 웅대한 점, 그리고 옥개 받침이 5 단인 점, 전체적으로 정제된 규격에 가식성이 단조로운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형식의 것이라 하겠다.(참고자료 ; 경상북도, 1980, <<지방문화재대관>>, 258. ; 경북대학교박물관)

 

이 석탑은 수륜면 보월리 탑안(절골) 마을에 있다.

원래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사찰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79년 12월 복원 당시 틈이 벌어지고 모서리가 깨진 석탑의 기단 부분만이 본자리에 있었으며, 그 밖의 부분은 주변 농지에 묻혀 있었거나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1979년에 흩어져 있던 부분을 모아 2중의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복원했다.

탑의 규모는 높이가 520㎝이며 지대석(地臺石)의 한 변의 길이가 440㎝이다.

2중기단에 3층의 탑신부(塔身部)를 조성하였는데, 상층기단에 비해 하층기단은 다소 낮은 편이다.

탑의 상하기단의 면석(面石)의 각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2개씩을 모각(模刻)하여 3구(區)로 구분하고, 아래 기단 갑석(甲石)은 고각형(高閣形)의 2단 괴임을 두었다.

상륜(相輪)은 없어졌으며, 전체적으로 정제된 규격과 꾸밈이 단조로운 등 양식과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출처 : 성주군청)

             

탑신부의 각층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의 경사는 비교적 느리게 흐르고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희미하게 위로 들려 있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본 떠 새겼다.

    

옥개는 5단 받침과 2단의 괴임을 각출했다.
풍경을 단 흔적

주변에는 석등의 연화대석, 장대석 등이 산재하고 있어서 상당히 넓은 사역을 이룬듯하다.

             

성주 보월동 석조품(삼층석탑) 상단 보주(석재)1점 2000년 6월 26일-28일 도난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