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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문사龍門寺

노촌魯村 2023. 6. 25. 15:06

용문사 입구에 건립된 항일독립운동 기념비

한국민족독립운동 발상지, 항일운동 기념비, 양평의병 기념비, 용문 항일투쟁 기념비 등이 2015년 건립되었다.

용문사 일주문

용문사(龍門寺)는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양평군 용문면의 용문산 자락에 있다.

신라 신덕왕 2년(913)에 창건되어 고려 우왕 4년(1378)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이 옮겨져 봉안되었고, 조선 태조 4년(1395)에 중창되었다. 고종 30년(1893) 다시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웠다. 1982년 선걸 스님이 취임하여 대웅전·삼성각·범종각·지장전·관음전·요사·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신라 신덕왕 2년인 913년에 승려 대경(大境)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설에 따르면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행차하여 직접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려 우왕 4년인 1378년에 지천(智泉)이 개풍군 경천사에 있던 대장경을 이 곳에 옮겨 봉안했다.

조선 세종 29년인 1447년에 세종의 둘째 왕자인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다시 지었다. 수양대군은 왕이 된 뒤 왕명으로 용문사를 중수하도록 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했으나, 대한제국 순종이 왕위에 오른 1907년에 대한제국 군대 해산으로 의병 운동이 일어나면서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워버렸다.

1909년부터 차츰 중건하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현대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1907년(융희 1)에 일본군의 병화로 전건물이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취운(翠雲)이 소규모로 재건하여 유지해 오던 중 그마저 6 ·25전쟁 때 파괴되어 3칸의 대웅전과 관음전·산령각(山靈閣)·종각·요사(寮舍) 등만 남게 되었다. 1982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절에서 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곳에 조선 전기의 정지국사(正智國師)부도 및 정지국사탑비가 있다. 부도와 탑비는 함께 보물 제531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경내에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이는 마의태자가 심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출처 : 위키백과)

사천왕문四天王門
2023.5.30 양평 용문사에서 촬영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楊平 龍門寺 銀杏나무. 천연기념물.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번지)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나이와 높이에 있어서 최고 높은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줄기 아래에 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나무는 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는데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은행나무(銀杏나무, 학명: Ginkgo biloba 깅크고 빌로바)는 겉씨식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이다. 공손수(公孫樹), 압각수(鴨脚樹)로도 부른다.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가을에 잎이 노랗게 물들며, 가로수 등으로 널리 활용된다. 은행나무문에서 유일하게 멸종하지 않고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져 온 나무이다.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라는 뜻이다. 흔히 열매로 여겨지는 은행나무 씨가 살구와 비슷하며 표면이 은빛 나는 흰 가루로 덮여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냄새가 매우 심하다.) 은행나무는 30년 가까이 자라야 씨를 맺는데, 따라서 "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나무"라고 "공손수(公孫樹)"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은행나무 잎이 오리발(鴨脚)과 닮았다 해서 "압각수(鴨脚樹)"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알은 "백과(白果)", "압각자(鴨脚子)" 등으로도 부르며, 은행나무 목재는 "행자목(杏子木)"이라 부른다.

중국어로는 "인싱(银杏, 銀杏, yínxìng)"이라 부른다. 나무는 "궁쑨수(公孙树, 公孫樹, gōngsūnshù), "야자오수(鸭脚树, 鴨腳樹, yājiăoshù)"로도 부르며, 은행알은 "인싱쯔(银杏子, 銀杏子, yínxìngzǐ)"나 "야자오쯔(鸭脚子, 鴨腳子, yājiăozǐ)"로 부른다.

일본어로는 나무를 "이초(イチョウ, 銀杏)", 은행알을 "긴난(銀杏, ぎんなん)" 또는 "긴쿄(銀杏, ぎんきょう)"로 부른다. 일본어 "이초(イチョウ, 銀杏)"의 어원이 중국어 "야자오(鸭脚, 鴨腳, yājiăo)"라는 설이 있다.

은행나무속의 학명인 Ginkgo는 1712년 엥겔베르트 켐퍼의 《Amoenitatum exoticarum》에 처음 등장하는데, 이는 "은행알"을 뜻하는 일본어 "긴쿄(銀杏, ぎんきょう)"의 철자를 잘못 적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종소명 biloba는 "두 갈래조각"을 뜻하는 라틴어로, 잎이 두 갈래로 갈라져 붙은 이름이다.

한·중·일 외 지역에서는 은행나무가 학명을 따라 "ginkgo"로 불리며, 영어 발음은 "깅크고(/ˈɡɪŋkɡoʊ/)" 또는 "깅코(/ˈɡɪŋkoʊ/)"이다. 은행나무를 영어로 "메이든헤어 트리(maidenhair tree)"라고도 하는데, 이는 은행나무 잎이 "메이든헤어 펀(maidenhair fern)"이라 불리는 공작고사리의 잎과 모양이 비슷해 붙은 이름이다.

은행나무 꽃말은 장엄, 장수, 정숙이다.

신생대 에오세(5,580만 년~3,390만 년)에 번성하였던 식물로, 현존하는 종은 은행나무문 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어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린다.

《산림경제》에는 "둥근 종자를 뿌리면 암나무로 되고 세모지거나 뾰족한 종자에서는 수나무가 생겨난다고 하고, 수나무를 암나무로 만들려면 암나무의 가지를 얻어 수나무줄기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넣어주면 된다."는 기록 및 "열매를 과식하면 소화기를 해치고 중독성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기온이 낮은 고원지대(해발 500m 이상)와 한반도 북부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분포한다.

인간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외딴 곳에서 야생 상태의 은행나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야생 은행나무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중국 저장성 일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 은행나무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도 오래전부터 인간의 활동이 있던 곳이라, 야생 개체임을 분명히 하기는 어렵다.

은행나무의 열매는 무거워 널리 퍼지지 못하며, 악취가 심해 동물에 의해 이동되지도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은행나무는 오래전부터 인간에 의해 심겨진 것이다.

다음은 2007년 앤더슨(Anderson) 등과 2015년 노비코프(Novíkov) 등의 연구에 기초한 종자식물 계통 분류이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로,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다. 은행은 암나무에서 열리며, 수나무에서 꽃가루가 날아와 수분한다. 씨를 맺기 전까지는 암수를 구별하기가 힘들었으나, 2011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은행잎을 이용해 수나무에만 존재하는 유전자 부위를 검색하여 1년생 이하의 어린나무까지 암수를 정확히 감별하는 방법을 개발함.

은행나무의 줄기는 곧게 자라며 나무껍질은 그물 모양으로 갈라져 우둘투둘하다. 가지가 잘 갈라지는데 긴 가지와 짧은 가지 2종류가 있다.

소나무, 향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등 대부분의 겉씨식물은 잎이 침상(針狀)인데, 은행나무의 잎은 부채꼴로 중간부위가 갈라진다. 은행잎은 긴 가지에서는 어긋나며 짧은 가지에서는 3~5개씩 조밀하고 어긋나게 달려 마치 한곳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또 긴 가지의 잎은 깊이 갈라지며 짧은 가지의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한 것이 많다. 봄에 새잎이 돋고 가을에 노랗게 단풍이 물든 후 낙엽을 떨군다.

수분기는 4~5월 경이며, 암그루에는 2개의 배주가 T자형의 자루에 붙어 잎과 함께 피며, 수그루에는 1~7개의 포자수가 잎과 함께 피어난다.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며, 흔히 열매로 여겨지는 은행알은 식물형태학적으로는 씨(종자)이다. 9~10월 무렵에 열리는 황색의 종자는 크게 바깥쪽 육질층(육질외종피, sarcotesta)과 딱딱한 중간 껍질(후벽내종피, sclerotesta), 그리고 그 안쪽의 얇은 껍질(내종피, endotesta)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황색의 육질외종피는 악취를 풍기며, 그 악취로 인해 각 지역에서 암나무와 관련된 민원이 매우 많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빌로볼과 은행산이라는 점액 물질이 있어 인체에 닿으면 염증을 일으킨다.

은행나무는 수형이 크고 깨끗하며, 오래 살아 고목이 많다. 다 자란 은행나무의 높이는 보통 10~15m에 이르나, 간혹 높이는 40m까지, 지름은 4m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로, 나무의 나이는 약 1100년이고 높이 41m, 둘레 11m에 이른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 외에도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은데, 충청북도 기념물 제5호인 청주 압각수는 나이가 9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30m, 둘레가 8m이다.

은행나무는 인간의 도움 없이 번식이 어렵다. 씨가 무겁고 커서 바람 등으로 널리 퍼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특유의 냄새 때문에 다람쥐와 같은 동물의 힘을 빌려 번식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나무는 씨에서 묘목을 키우기가 쉽고, 묘목은 옮겨 심어도 잘 살며, 어릴 때의 성장이 빠른 편이다. 꺾꽂이로도 번식이 잘 된다. 번식용 종자는 가을에 땅속에 묻어두는 이른바 노천매장법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품종은

         큰잎은행나무(G. biloba 'Laciniata'): 잎이 크며 톱니가 크고 그 수도 많아서 다섯 갈래로 갈라진 것처럼 보인다.

         무늬은행나무(G. biloba 'Variegata'): 잎에 무늬가 있다.

         늘어진은행나무(G. biloba 'Pendula'): 가지가 아래로 늘어진다.

은행나무 목재(행자목)은행나무는 가을 단풍이 아름답고 병충해가 거의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서 정자나무 또는 풍치수, 가로수로도 많이 심고 있다.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를 3대 정자나무라고 말한다. 또,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 화재에 강하므로 방화수로도 이용된다.

은행나무 목재인 행자목은 황백색이며 조각재·가구재로 쓰인다.

은행은 구워 먹거나 전골재료로도 사용된다. 한방에서는 천식과 기침을 그치게 하는 데 쓴다.

은행나무의 씨에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종전에는 이 유독 성분이 청산칼륨과 유사한 시안화물의 일종으로 추측이 되었지만 1985년 MPN (4-methoxypyridoxine)이라는 물질임이 밝혀져 깅코톡신(Ginkgotoxi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은행의 열매 날것 한 알에는 80µg의 MPN이 있고(MPN은 열에 안정적이므로 은행 열매를 가열해 조리를 해도 그 양의 변화는 거의 없다.) 하루에 몇 알까지가 안전한 섭취량인지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도된 치명적인 중독 사례들을 보면 15~574알의 섭취만으로도 치사한 경우들이 있다. 치명적인 중독 사례의 상당수가 유아나 아동이며 치사율이 27% 정도였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경우에는 하루에 5알 이상을 먹거나 장기간에 걸쳐 섭취하는 경우에는 중독 증상이 발생할 수가 있고 사망에도 이를 수가 있으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은행 열매에 의한 중독은 비타민 B6(pyridoxine)로 어느 정도 완화되거나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잎에서 추출되는 플라본글리코사이드는 혈액순환 개선제로 쓰인다.

은행나무는 한국 민속과 설화에 자주 등장한다.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설이 전해진다.

공자묘의 뒤쪽에 많이 심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문묘·사단·절 등의 행단(杏亶)에 살구나무를 심은 것이 잘못 전하여진 것으로 보인다. 행단은 학문을 수양하는 곳으로 은행나무는 독특한 향을 내어 벌레가 없는데, 공자는 그 아래 단 즉 마루를 놓고 제자들을 가려쳤다는 것에 유래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은행나무 아래 금낭화
2023.5.30 대웅전 앞에서 본 삼층석탑과 은행나무
출처 : 문화재청
대웅전
대웅전 내부
용문사 마애약사여래좌상

관음전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楊平 龍門寺 金銅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790호.경기도 양평군 용문산로 782-0 (용문면, 용문사))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고려후기 14세기에 크게 유행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금동보살상의 전형을 보여주는 상이다. 이 유형의 보살상은 현재 대마도 관음사에 봉안되어 있는 서산(瑞山) 부석사( 浮石寺) 금동관음보살좌상(1330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금동관음·대세지보살입상(이왕가박물관 구장(舊藏), 1333년), 국립전주박물관 금동보살좌상, 청양 운장암 금동보살좌상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선운사 도솔암 금동지장보살좌상도 같은 양식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이 형식의 보살상은 살이 많은 방형의 얼굴에, 사실적인 이목구비, 가지런한 앞머리, 어깨 위에 흘러내리는 수발(垂髮), 가슴에는 화려한 목걸이 장식, 양 무릎 위에 표현된 영락 등으로 그 특징을 요약해 볼 수 있고, 이 밖에도 소매가 있는 대의형태의 옷을 입고, 양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說法印)을 결하고 있으며 내의를 묶은 매듭이 나타난다. 특징적인 표현으로는 왼쪽 가슴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긴 삼각형 모양의 내의(內s衣)장식을 꼽을 수 있는데, 내의에 헝겊을 두껍게 겹쳐 만든 장식을 연결하여 어깨에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장식의 불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당말오대(唐末五代)부터이며 대표적인 예로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목조보살입상을 꼽을 수 있다. 근진미술관(根津美術館)의 아미타여래도(1306년)을 보면 내의장식에 화려한 문양이 보이는데, 고려후기 불보살상에서는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상에서와 같이 둥근 화문(花紋)을 새김으로써 화려한 내의 장식을 조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보관이 후보(後補)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조각적으로도 우수하며 고려후기 14세기 금동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상이다.(출처:문화재청)

지장전
지장전 내부
지장전 벽화
지장전 벽화
지장전 벽화
지장전 벽화
지장전 벽화
금향원金薌院(개금불사전)
용문사 삼층석탑
미소전
미소전 나한상
미소전 나한상
산령각
용문사 칠성탱화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 및 비(楊平 龍門寺 正智國師塔 및 碑.보물  제531호.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산99-6번지 용문사)

용문사에서 약 300m 떨어진 동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지국사(1324∼1395)의 행적 등을 기록한 것이다. 정지국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황해도 재령 출신이며 중국 연경에서 수학하였다. 조선 태조 4년에 입적하였는데 찬연한 사리가 많이 나와 태조가 이를 듣고 ‘정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탑과 비는 80m정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탑은 조안(祖眼) 등이 세운 것이며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이 4각이고 윗받침돌과 탑몸이 8각으로 되어 있어 전체적인 모습이 8각을 이루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기고, 북 모양의 가운데받침돌에는 장식없이 부드러운 곡선만 보인다. 탑몸에는 한쪽 면에만 형식적인 문짝 모양이 조각되었다. 지붕돌은 아래에 3단 받침이 있고, 처마 밑에는 모서리마다 서까래를 새겼다. 지붕돌 윗면에는 크게 두드러진 8각의 지붕선이 있고, 끝부분에는 꽃장식이 있는데 종래의 형태와는 달리 퇴화된 것이다. 꼭대기에는 연꽃 모양의 장식이 놓여 있다.
비는 작은 규모의 석비로 윗부분은 모서리를 양쪽 모두 접듯이 깎은 상태이고, 문자가 새겨진 주위에는 가는 선이 그어져 있다. 비문은 당시의 유명한 학자인 권근(權近)이 지었다. 처음에는 정지국사탑에서 20m 아래 자연석 바위에 세워 놓았는데, 빠져 나와 경내에 뒹굴고 있던 것을 1970년경 지금의 위치에 세웠다.(출처:문화재청)

2023.6.23 '(사)대구박물관회' 용문사 답사 안내하면서
2023.6.23 '(사)대구박물관회' 용문사 답사 안내하면서
2023.6.23 '(사)대구박물관회' 용문사 답사 안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