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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釜山 梵魚寺 三層石塔). 범어사 석등(梵魚寺 石燈)

노촌魯村 2023. 11. 18. 00:00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

신라 문무왕 18년(678년),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창건하였다. 전국 사찰중에서 유일하게 국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소장하고 있으며, 가장 오래된 판본 중 하나로 권4의 5편에 들어 있는 '의상전교(義湘傳敎)'에는 의상대사가 열 곳의 절에 교를 전하게 해 화엄십찰을 창건하는 내용이 나오고, 이 가운데 '금정지범어(金井之梵魚)' 즉 금정산 범어사가 들어있음이 언급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서 놀았다고 해서 산 이름이 금정산(金井山)이고 그곳에 사찰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를 건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화엄경의 이상향인 맑고 청정하여 서로 돕고 이해하고 행복이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지상에 실현하고자 설립된 사찰로 범어사는 역사적으로 많은 고승대덕을 길러내고 선승을 배출한 수행사찰로 오랜 전통과 많은 문화재가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를 비롯해 원효대사·표훈대덕·낭백선사·명학스님과 그 대에 경허선사·용성선사·성월선사·만해 한용운선사·동산선사 등 고승들이 수행 정진하여 명실상부한 한국의 명찰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1950년대 동산스님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였고, 이후 한국근대불교를 이끌었으며, 총림지정 이후 조사스님들의 뜻을 받들어 수행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하였다. 특히 2019년 범어사의 오랜 숙원사업인 선문화교육관과 2021년 전국사찰 최대 규모의 범어사 성보박물관의 대작불사를 완료하였다.(출처 :범어사)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釜山 梵魚寺 三層石塔. 보물. 부산 금정구 범어사로 250, 범어사 (청룡동))

범어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이 탑의 특징은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위·아래층 기단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대신 안상(眼象)을 큼직하게 조각한 것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평평하고 얇은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어졌다.

통일신라 흥덕왕(재위 826∼836) 때에 세운 탑으로, 일제 강점기에 크게 수리를 할 때 기단 아랫부분에 돌 하나를 첨가하는 바람에 기단부가 너무 크고 높은 느낌을 준다. 밑에 둘러진 난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한다.(출처 : 문화재청)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의 범어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된 삼층 석탑.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釜山梵魚寺三層石塔)은 이중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塔身)을 갖춘 부산 지역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보여 준다. 그러나 기단부의 안상(眼象) 표현에서 다른 탑과 구별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범어사에 전하는 기록으로는 675년(문무왕 15)에 건립되었다고 하지만 그대로 믿기는 어려우며, 옥개 받침이나 기단의 안상 등으로 보아 건립 연대는 범어사와 같은 830년(흥덕왕 5) 무렵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리라 생각된다.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은 부산 범어사 대웅전과 보제루(普濟樓) 사이의 안뜰에 세워져 있는데, 중심축에서는 벗어나 동쪽의 비로전(毘盧殿) 쪽으로 비켜 서 있다.

높이가 4m인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의 하층 기단에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를 생략하고 안상을 표현하였는데, 하층 기단의 중석에 각 면 3구씩을 조각하였다. 상층 기단에는 모서리에 우주는 표현하였지만 탱주가 없고 우주와 우주 사이의 면석에 각 면 1구씩의 큼직한 안상을 조각하였다. 이처럼 상층 기단의 넓은 면석 전체에 하나의 안상 조각을 베푼 석탑은 통일 신라 시대 석탑 가운데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칠곡 기성리 삼층석탑 정도이므로 부산 지역에 존재하는 매우 특수한 의장(意匠)이라 할 수 있다. 상층 기단의 중석은 4매의 석재로 되어 있으며, 갑석은 2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상층 기단의 갑석 아래에는 꽤 높은 부연이 양각되어 있으며, 상면에는 모난 1단의 높은 옥신굄[석탑의 지붕돌과 탑신을 연결하는 굄돌]을 모각하였다.

각 층의 옥개석(屋蓋石)과 옥신석(屋身石)은 각각 한 돌로 이루어졌는데, 옥개석의 옥개 받침은 4단이고 통일 신라 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처럼 추녀 하단은 수평이며 추녀의 상단은 경쾌한 반전을 보인다. 옥신석은 네 모서리에 우주가 양각되어 있으며 면석에는 아무런 장식 문양이 없다. 상륜부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있는데 이 가운데 보주는 후대에 첨가하였고, 노반은 거꾸로 놓여 있다.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의 기단은 원래 이중 기단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탑을 해체 수리하면서 하층 기단 아래에 또 하나의 석단(石壇)을 첨가하여 삼중 기단으로 만들었으며 탑 주위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2010년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훼손하였던 삼층석탑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난간을 없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5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은 기단과 탑신부의 조각 수법에서 9세기경에 제작된 석탑의 특색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석탑은 상하 기단 표면에 조각된 안상 장식이 다른 탑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기법이어서 신라 후기 표면 장식 석탑의 특이한 사례로 주목된다.(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부산역사문화대전 금정구)

탑신부는 1층 몸돌에 비해 2층 이상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평평하고 얇은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며, 밑면의 받침이 4단으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어졌다.

이 탑의 특징은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에서 찾을 수 있는데, 위·아래층 기단의 옆면을 기둥 모양으로 장식하지 않고 대신 안상(眼象)을 큼직하게 조각한 것이다.

범어사 석등(梵魚寺 石燈.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부산 금정구 범어사로 250 (청룡동))

범어사 안에 있는 석등이다. 석등은 보통 금당이나 탑 앞에 두는데, 이 석등도 원래는 용화전(龍華殿) 앞에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에 절내의 종루와 그 자리를 바꿔놓은 것이다.

석등은 3단의 받침 위에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린 일반적인 형태로, 각 부재가 8각을 이루고 있다. 받침부분은 가운데기둥을 사이에 두어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아오르는 연꽃무늬를 새겨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네모난 창을 두었는데 창의 가장자리마다 창문을 달았던 10개의 구멍흔적이 남아있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고, 꼭대기에는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위로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후대에 보수한 받침의 가운데기둥이 빈약하고, 윗받침돌이 두터워서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범어사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을 세운지 3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만들었다고 하나 양식적인 특징으로 보아 9세기경인 통일신라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