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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 梵魚寺 大雄殿)

노촌魯村 2023. 11. 19. 10:55

부산 범어사 대웅전(釜山 梵魚寺 大雄殿. 보물. 부산 금정구 범어사로 250, 범어사 (청룡동))

경상남도 3대 절 중 하나로 유명한 범어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통일신라 문무왕 18년(678)에 처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한 옛날 일본인이 침입했을 때에는 이곳의 승려들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여 함께 싸우기도 했던 중요한 곳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1993년 문화재연구소 정밀실측 중 대웅전 종도리 묵서명에서 효종 9년(1658) 상량식을 거행한 내용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대웅전이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후 1602년 당시 현감이 임시 복구하였으며 1658년 효종 9년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암막새 명문과 기단 각자, 목부재 기록 등으로 볼 때 현재 대웅전은 17세기에 중건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는 일반 대웅전과는 달리 이곳 범어사 대웅전에는 미륵보살과 가라보살을 각각 석가모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 있다.

앞면·옆면 3칸 크기를 가진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또한 건물 안쪽에 불상을 올려놓는 자리인 불단과 불상을 장식하는 지붕 모형의 닫집에서 보이는 조각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조선 중기 불교건축의 아름다움과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대웅전 측면
대웅전 공포
대웅전 용마루 위의 연봉
대웅전 용마루 위의 연봉
대웅전 기단부
대웅전 기단부와 계단 소맷돌
대웅전 계단 소맷돌
대웅전 계단 소맷돌
돌계단의 수두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釜山梵魚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보물.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 부산 범어사 대웅전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석가여래 삼존 좌상.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釜山梵魚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은 2007년 9월 18일에 보물 제152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범어사 대웅전의 주불로서, 개금(改金)할 때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불상기문(佛像記文)과 불상기인발원축(佛像記因發願祝)을 통하여 석가모니불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의 수기(授記) 삼존불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순치 18년인 1661년(현종 2)이라는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있고, 수두(首頭) 희장(熙莊)을 비롯한 보해(寶海), 경신(敬信), 쌍묵(雙黙), 뇌영(雷影), 신학(信學), 청언(淸彦) 등이 조각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수조각승(首彫刻僧) 희장은 1639년(인조 17)에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 제1378호]을 조각한 청헌(淸憲)과 같이 활약하였고, 1646년(인조 24)에는 천은사 수도암 목조아미타삼존불을 조각한 승일(勝一)과도 함께 작업을 하였다. 1650년(효종 1)대에는 선종 대선사(禪宗大禪師)라는 칭호를 받으며 청도 대운암(大雲庵) 불상[1654년]을 제작하였다. 이외에도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희장의 작품이 확인되는데,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희장이 완숙기에 조성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현전하는 자료를 통해 희장은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17세기 중·후반기의 대표적인 조각승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가운데 중앙에 봉안된 석가모니불상은 높이 135㎝, 무릎 폭 99㎝의 비교적 큰 불상에 속한다. 높이 57㎝의 목조 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상으로, 육계(肉髻)는 도드라지게 표현하지 않고 비교적 둥근 형태이며, 중앙에는 계주(髻珠)가 큼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얼굴은 네모꼴로 콧날이 오뚝하며, 입술은 얇고 두 귀는 길게 늘어져 있다. 통견(通肩)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어깨는 둥글고 완만하며 옷 주름은 간단하면서도 정돈이 되어 있어 전반적으로 근엄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얼굴이나 가슴, 배 부분 등이 양감 없이 밋밋하여 경직된 느낌을 주며, 왼쪽 무릎 위에 있는 왼손의 손가락 표현에서 사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좌우의 협시상도 본존과 마찬가지로 근엄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왼쪽의 미륵보살상을 보면, 왼손으로는 꽃봉오리 부분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긴 가지의 끝 부분을 받쳐 들고 있다. 오른쪽에 결가부좌한 제화갈라보살상은 미륵보살상과 손의 좌우만 바뀌었을 뿐 같은 도상으로 되어 있고 크기도 동일하다. 제화갈라보살상과 미륵보살상의 크기는 높이가 125㎝, 무릎 폭이 88㎝이다.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비례가 적당하여 당당하고 균형 잡힌 형태를 보이며, 상호(相好)는 풍만한 양감 속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우러져 자비롭고 단정 우아한 모습을 잘 보여 준다. 법의 주름은 직선의 선묘로 간략히 처리하여 여백을 많이 남겼지만, 전체적으로 힘이 있으면서도 잘 정돈되어 있다. 무릎 아래에는 넓은 띠 모양의 주름이 좌우 대칭으로 펼쳐져 부채꼴 모양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은 희장 유파의 조각적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불상의 자세가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있는 데 비해, 부산 범어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모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있어 당당하고 균형 잡힌 모습을 보여 주는 매우 완성도 높은 우수한 불상이다. 또한 불상 기문을 통하여 정확한 존상 명칭은 물론 조성 시기와 조각가 그룹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상들의 편년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부산역사문화대전 금정구)

범어사 대웅전 영산회상도(梵魚寺 大雄殿 靈山會上圖.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청룡동, 범어사))

영산회상은 넓은 의미로는 석가여래의 가르침 또는 불교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표상이며, 좁은 의미로는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한 법회모임을 말한다. 영산회상도는 이와 같은 의미와 내용을 표현한 불화로, 석가여래를 주존불(主尊佛)로 모시는 대웅전에 주로 봉안된다.

범어사 대웅전의 후불벽(後佛壁)을 꽉 채운 채 걸려 있는 이 영산회상도는 족자형의 대형 불화로 괘불(掛佛)의 폭과 맞먹는 대형이면서도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채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있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8대보살과 10대 제자 및 외호신중(外護神衆)들이 불격(佛格)에 따라 크기를 달리한 채 부채꼴을 이루면서 좌우대칭적인 구도로 군중 형식을 띠며 묘사되어 있다. 또한 대형 화면에 자비로운 미소를 자아내고 있는 석가여래를 위시한 협시상(挾侍像)들과 엄숙한 표정의 신중들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전체적으로 화면을 상․중․하단부로 구분한 후 중단부 중앙에 협시보살상 보다 2배 정도 크게 석가여래를 묘사하였고, 화면 중단부 본존 좌우에는 자색의 구름과 함께 상반신이 묘사되어 있는 보살상들이 각각 4구씩 협시하고 있다.

그리고 하단부에는 불단 좌우에 옅은 먹으로 두광을 표현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협시보살상 보다 절반 정도 축소된 크기로 시립(侍立)하고 있으며, 그 옆에는 합장한 제석천과 범천이 서 있다. 또한 하단부 좌우 양가에는 사천왕이 묘사되어 있는데, 지물과 갑옷 및 수염 등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어 화면에 생동감과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화기를 통해 범어사 대웅전 내에 봉안되어 있는 삼장보살도, 제석신중도 및 관음전 백의관음도 등과 함께 1882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범어사 대웅전 석가영산회상도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대형 후불탱화일 뿐 아니라, 구도와 채색이 뛰어나며 제작 당시의 용상방(龍象榜)과 불화 제작에 참여한 17명의 명단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등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다.(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