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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범어사 비로전(梵魚寺毘盧殿)과 범어사 미륵전(梵魚寺 彌勒殿)

노촌魯村 2023. 11. 19. 20:50

범어사 비로전(梵魚寺毘盧殿.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

범어사 비로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부불전(副佛殿)으로, 처마는 전면만 부연(附椽)을 둔 겹처마이고, 배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2014년 시행된 비로전 해체수리 때 종도리 밑면에서 발견된 「동래도호부북령금정산범어사비로전상량문(東萊都護府北嶺金井山梵魚寺毘盧殿上樑文)」이란 제목의 묵서(墨書)한 상량문을 통해 1684년(康熙 24)에 중창(重創)된 건물이라는 건축 연혁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됨으로써 그동안 간접사료에 기록된 범어사 비로전의 건립연대를 확인했을 뿐 아니라, 부산 지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임이 입증되었다.

범어사 비로전의 고졸(古拙)한 익공식 공포(翼工式 栱包)는 조선 중기에 유행했던 2익공식 공포의 선구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어 조선 중기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익공식 공포의 발달과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

범어사 비로전은 1684년 중창 때 작성된 상량문이 남아 있고, 주요 구조 부재들도 대부분 중창 당시인 17세기 말(1684년)의 부재를 유지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부산 지역 목조 건축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던 익공식 맞배집의 우수한 사례로 익공식 공포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건축 문화재이다.(출처 : 문화재청)

범어사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梵魚寺 毘盧殿 木造毘盧遮那三尊佛坐像.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범어사))

범어사 비로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방형(方形)의 수미단(須彌壇) 위 연화좌(蓮華座)에 각각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중앙 본존불은 125㎝, 좌우협시는 100㎝ 정도의 크기로, 중앙의 본존불이 협시불에 비해 규모가 크게 조성되었다.

본존인 비로자나불은 등을 세우고 얼굴을 앞으로 약간 숙여 아래를 굽어보고 있으며, 수인은 지권인(智拳印, 오른손 검지를 왼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양)이다. 보편적인 조선 후기 불상과 마찬가지로 신체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다. 좌우 협시보살은 본존불에 비해 규모가 작고, 보살로서의 형식적인 차이가 있을 뿐 자세나 신체의 비례, 전체적인 얼굴 표현 및 기법, 인상 등은 본존불과 거의 유사하다.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비교적 규모가 큰 불상으로, 신체 비례는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차이가 있으나 안면과 머리 부분의 표현은 매우 흡사하다.

범어사에 전해오는 비로자나삼존불의 「중수도금기(重修塗金記)」에 의하면, 비로전의 삼존불상은 1638년 해민(海敏) 스님이 비로전을 중창할 당시에 조성되었으며, 이후 1722년의 중수․도금 작업에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제작한 진열(進悅), 청우(淸雨), 청휘(淸徽), 관성(貫性), 옥홀(玉㧾) 등이 관여하였다고 한다.

『범어사지(梵魚寺誌)』, 범어사 관음전 대좌묵서명 및 「중수도금기」 등에 기록된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의 중수와 조각승에 대한 기록이 동일한 것을 보면 「중수도금기」의 내용은 확실한 것으로 판단된다.

범어사 비로전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과 함께 조각승 진열의 작품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작품의 수준도 높은 뛰어난 문화재이다.(출처 : 문화재청)

범어사 미륵전(梵魚寺 彌勒殿.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범어사)))

범어사 미륵전은 대웅전 아래 중정(中庭)의 왼편에 비로전과 함께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식(翼工式) 맞배지붕 부불전(副佛殿)이다.

범어사 미륵전은 2014년 미륵전 해체수리 때 어칸 종도리 기문장처(記文藏處)에 보관된 상량문을 통해 1887년(고종 24)에 대대적으로 수리되었음이 확인되어 건물의 건립연대가 밝혀졌다.

미륵전은 범어사의 창건 내지는 중창에 즈음한 역사적 상황과 가람배치, 건축 상황을 기록한 문헌자료인 「범어사창건사적(梵魚寺創建事蹟)」등의 핵심적 서술 대상이며, 임진왜란 이후 미륵전의 소실과 재건, 중수(重修) 등 건물의 연혁에 관한 기록이 다른 어떤 건물보다 풍부하다.

또한 상량문은 건물의 조영(造營) 의도, 사찰 대중들의 상황, 목수 등으로 구성된 당시의 공역(工役) 조직 등을 살필 수 있어 건축사적 가치 뿐 아니라 불교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문헌자료이다.

범어사 미륵전은 각종 기록을 통해 볼 때 범어사 창건가람(創建伽藍)의 주불전(主佛殿)이었으며, 적어도 고려시대까지 주불전(主佛殿)으로서 존속했을 가능성이 크다. 비록 소규모의 부불전으로 그 위상이 낮아졌지만 범어사의 창건이념과 불교정신 뿐 아니라 임진왜란으로 다른 어느 지역보다 경제사정이 어려웠던 당시 부산(동래)의 절실했던 역사적 사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조영 기록을 갖추고 있어서 건물의 건립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임진왜란 이후 부산 지역의 시대적, 건축적 지역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중요한 건축유구(建築遺構)이다.(출처 : 문화재청)

범어사 미륵전 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