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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도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淸道鳳岐里三層石塔)

노촌魯村 2024. 5. 15. 22:09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淸道鳳岐里三層石塔.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 719-5)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삼층 석탑.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3호로 지정되어 있는 통일 신라 때 석탑이다. 이중 기단의 삼층 석탑으로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준다. 상하층 기단은 우주와 각 면 2개의 탱주를 새겼다. 원래는 쌍탑으로, 현재는 서탑만 남아 있다.

주변에서는 기와 조각, 토기 조각이 소량 수습되었는데, 일설에는 현 석탑 주변 일대가 천정사(天井寺)라는 대규모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풍각 초등학교 내에 남아 있는 치석재들과 함께 천정사지의 유물로 추정된다.

석탑의 위치한 곳이 천정사라고 하는 대규모 사찰이 있었다고 할 뿐 천정사의 창건 내력과 역사적 사실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00년경 간행된 『사찰 고적고(寺刹古蹟攷)』에 따르면 천정사가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전당(殿堂)으로 신라 법흥왕(514∼540년)이 왕권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시절 내부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하였다가 신라를 평정하였다고 하여 정전사(停戰寺)라 불리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천정사는 쌍탑가람이었지만, 광복 직후 동탑은 도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석탑은 서탑이라 전한다.

천정사의 창건 연대 하한 시기에 관한 추정은 석탑과 같이 전해오는 석등 연화대석의 제작 연대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석등 연화대석은 기단의 위·아래층에 모두 탱주를 2개씩 마련하고 있고, 불국사 석가탑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조성 시기는 8세기 이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은 청도군의 중심지로부터 서쪽을 약 10㎞ 떨어진 풍각 초등학교 맞은편, 지방도 902호선 주변에 위치한다.

석탑의 위치로 보건대 지방도 902호선은 절터의 오른편 일부분을 파괴하고 개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탑의 남쪽에는 마을 안쪽으로 진입하는 소로가 있으며, 절터에는 석탑과 남측에 석등 연화대석 1기만 남아 있다.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기단(基壇)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전체 높이 5.522m, 폭 3.58m의 화강암재 석탑이다.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모두 8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돌의 각면은 탱주로 구분하고 있다.

상대(上臺)는 상대중석을 받기 위하여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의 몰딩이 있으며, 상대 갑석은 4석으로 되었다.

상면에는 약간의 경사가 있으며 2단의 각형 몰딩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돌은 넓고 얇은 편으로 5단이며 처마끝은 수평으로 되어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소실되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이 2·3층 탑신보다 2.5배 이상 크다.

2012년 현재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에는 보호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관리 상태를 보면 현재 상륜부의 형태는 알 수 없고 상층·하층 기단 귀갑석 모서리가 파손되어 있으나 석탑의 상태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淸道鳳岐里三層石塔.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 719-5)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봉기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삼층 석탑.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은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3호로 지정되어 있는 통일 신라 때 석탑이다. 이중 기단의 삼층 석탑으로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준다. 상하층 기단은 우주와 각 면 2개의 탱주를 새겼다. 원래는 쌍탑으로, 현재는 서탑만 남아 있다.

주변에서는 기와 조각, 토기 조각이 소량 수습되었는데, 일설에는 현 석탑 주변 일대가 천정사(天井寺)라는 대규모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 풍각 초등학교 내에 남아 있는 치석재들과 함께 천정사지의 유물로 추정된다.

석탑의 위치한 곳이 천정사라고 하는 대규모 사찰이 있었다고 할 뿐 천정사의 창건 내력과 역사적 사실 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1900년경 간행된 『사찰 고적고(寺刹古蹟攷)』에 따르면 천정사가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전당(殿堂)으로 신라 법흥왕(514∼540년)이 왕권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시절 내부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피난하였다가 신라를 평정하였다고 하여 정전사(停戰寺)라 불리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천정사는 쌍탑가람이었지만, 광복 직후 동탑은 도괴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석탑은 서탑이라 전한다.

천정사의 창건 연대 하한 시기에 관한 추정은 석탑과 같이 전해오는 석등 연화대석의 제작 연대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석등 연화대석은 기단의 위·아래층에 모두 탱주를 2개씩 마련하고 있고, 불국사 석가탑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조성 시기는 8세기 이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은 청도군의 중심지로부터 서쪽을 약 10㎞ 떨어진 풍각 초등학교 맞은편, 지방도 902호선 주변에 위치한다.

석탑의 위치로 보건대 지방도 902호선은 절터의 오른편 일부분을 파괴하고 개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탑의 남쪽에는 마을 안쪽으로 진입하는 소로가 있으며, 절터에는 석탑과 남측에 석등 연화대석 1기만 남아 있다.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은 통일 신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기단(基壇)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전체 높이 5.522m, 폭 3.58m의 화강암재 석탑이다.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모두 8개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돌의 각면은 탱주로 구분하고 있다.

상대(上臺)는 상대중석을 받기 위하여 각형(角形)과 호형(弧形)의 몰딩이 있으며, 상대 갑석은 4석으로 되었다.

상면에는 약간의 경사가 있으며 2단의 각형 몰딩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돌은 넓고 얇은 편으로 5단이며 처마끝은 수평으로 되어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소실되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이 2·3층 탑신보다 2.5배 이상 크다.

2012년 현재 청도 봉기리 삼층석탑에는 보호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관리 상태를 보면 현재 상륜부의 형태는 알 수 없고 상층·하층 기단 귀갑석 모서리가 파손되어 있으나 석탑의 상태는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상면에는 약간의 경사가 있으며 2단의 각형 몰딩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돌은 넓고 얇은 편으로 5단이며 처마끝은 수평으로 되어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한 편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소실되었다. 전체적으로 1층 탑신이 2·3층 탑신보다 2.5배 이상 크다.

절터에는 석탑과 남측에 석등 연화대석 1기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