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무진정(咸安無盡亭.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4길 25)
함안 무진정은 함안 군청에서 진동 방향으로 함안 대로를 따라 2.5㎞ 가면 괴산 교차로 우측 조남산 아래 자그만한 연못 언덕 위에 위치한다.
함안 무진정(咸安無盡亭)은 조선 시대 문신인 무진(無盡) 조삼(趙參)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567년(명종 22) 후손들이 세웠다. 조삼의 호를 따서 함안 무진정이라 하였다.
정자에 소장된 주세붕(周世鵬)이 적은 ‘함안 무진정 기문(無盡亭記文)’에는 1542년(중종 21)으로 되어 있어 1567년 이전에 함안 무진정의 이름으로 건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 중건한 것으로, 2013년 초 창호 보수 공사와 주변 석축 및 담장 공사를 하였다.
조삼은 1483년(성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1507년(중종 2)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경상도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목사와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겸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지냈다.
선조 때 함안 군수로 부임한 정구(鄭逑)가 군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매년 음력 4월 8일 함안 무진정 연못에서 낙화 놀이를 하였다고 전한다.
함안 낙화 놀이는 함안의 고유 민속놀이로 연등과 연등 사이에 참나무 숯가루로 만든 낙화에 불을 붙이는 불꽃놀이로 연못에 떨어지는 불꽃이 장관을 이룬다.
함안 낙화 놀이는 1985년 현재의 형태로 복원되어 매년 열리고,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괴항 마을에 전승되며 경상남도 무형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변에 수십 그루의 왕버들이 심어진 정자 앞 연못가는 사철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며, 연못 주변에 조삼과 그 후손들을 기리는 비석들이 있다. 연못 가운데에는 영송루(迎送樓)라는 작은 육모 지붕 정자가 있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함안 무진정(咸安 無盡亭.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경남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은 1542년 조삼(趙參)선생(1473~1544)이 후진양성을 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선생은 17세인 성종20년(1489)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2년(1507)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에서 지방관을 지냈고, 중앙에서는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독서를 좋아한 올곧은 성격으로 성균관의 생원일 때 연산군 폭정의 주도적 역할을 한 유자광을 처벌하자는 상소를 올려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손자이다.
정자는 출입문인 동정문(動靜門)과 정면 3칸, 옆면 2칸으로 이루어졌다.
정자의 중앙에는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마루방과 툇마루에는 개방이 가능한 들문을 설치하여 공간 활용을 더하였다.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준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다시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서원인 소수서원의 창시자인 주세붕이 무진정 기문을 지었으며, 무진정 정자 앞에는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이 있다.(출처 : 국가유산청)
함안 사람들은 무진정 앞의 연못을 일컬어 이수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부 함안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 함안에는 일수정, 이수정, 삼수정이 있었는데 근처에 신작로를 만들면서 일수정과 삼수정은 사라지고 이수정만 남았다고 한다.
연못 가운데 누각은 영송루(迎送樓)이다. 이 이수정을 달리 충노담(忠奴潭)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연못가에 서 있는 충노 대갑지비(忠奴大甲之碑)와 관련된 것이다.
함안 조씨 문중에 전해져 오는 기록과 비문을 참고하면 충노 대갑지비(大甲之碑)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묘호란 당시 노비 대갑이 주인 조계선(趙繼先. ?~1627)을 모시고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조계선이 전사하게 되자 대갑은 주인과 함께 죽는 것이 옳으나 고향에 주인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멀고 먼 의주에서 본가 근처에 이르러 조계선의 부음을 전하고는 "혼자 살면 어찌 면목이 있겠습니까. 주인을 난에서 구출하지 못하여 집에 갈 면목이 없습니다." 하고 지금의 검암천(儉岩川)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충노 대갑지비 옆으로는 부자 쌍절각(父子雙節閣)이 있다. 이 쌍절각은 조삼의 증손인 조준남(趙俊男)[?~1597]과 그의 아들 조계선의 효와 충을 기려 세운 전각이다.
조준남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이 쳐들어와 증조부 조삼의 묘를 파헤치자 왜적들을 뚫고 들어가 흙으로 관을 덮고 저항하였다. 왜적이 그를 위협하자 조준남은 "네놈들이 내 선조의 묘소를 무단 훼손하니 너희는 나의 불공대천의 원수다."라고 분노하며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조계선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627년 정묘호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출전하였다가 의주에서 전사하였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
함안 조씨 문중에 전해져 오는 기록과 비문을 참고하면 충노 대갑지비(大甲之碑)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묘호란 당시 노비 대갑이 주인 조계선(趙繼先. ?~1627)을 모시고 전쟁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조계선이 전사하게 되자 대갑은 주인과 함께 죽는 것이 옳으나 고향에 주인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멀고 먼 의주에서 본가 근처에 이르러 조계선의 부음을 전하고는 "혼자 살면 어찌 면목이 있겠습니까. 주인을 난에서 구출하지 못하여 집에 갈 면목이 없습니다." 하고 지금의 검암천(儉岩川)에 투신하였다고 한다.
충노 대갑지비 옆으로는 부자 쌍절각(父子雙節閣)이 있다. 이 쌍절각은 조삼의 증손인 조준남(趙俊男)[?~1597]과 그의 아들 조계선의 효와 충을 기려 세운 전각이다.
조준남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이 쳐들어와 증조부 조삼의 묘를 파헤치자 왜적들을 뚫고 들어가 흙으로 관을 덮고 저항하였다. 왜적이 그를 위협하자 조준남은 "네놈들이 내 선조의 묘소를 무단 훼손하니 너희는 나의 불공대천의 원수다."라고 분노하며 자결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 조계선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1627년 정묘호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출전하였다가 의주에서 전사하였다.
함안낙화놀이(咸安 落火놀이. 경남 무형유산)
함안 낙화놀이는 함안면 괴항마을에 전승되어온 고유의 놀이로 매년 4월초파일 마을입구 이수정에서 개최되어 왔으며, 그 유래는 정확히 전하여지지는 않지만 문헌과 조사를 통해 본 결과 17세기 조선중엽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는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함안면민을 중심으로 한 함안낙화놀이보존위원회가 결성되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다. 낙화놀이의 형태는 마을 자체에서 제작한 숯가루를 한지에 돌돌말아 낙화를 만들어, 이수정에 준비한 줄에 낙화를 걸어 불을 붙임으로써 숯가루가 불을 머금고 타면서 바람에 날리는 장관을 연출하는 함안군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다.(출처 : 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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