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주/경주인근자료

기림사

노촌魯村 2006. 2. 21. 16:47

 

 기림사 일주문

기림사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 절로 조선 시대 31본산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렀으나 원효대사가 확장하고 기림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조선 정조 때 경주 부윤 김광묵이 사재를 들여 중수하였고 철종 14년(1863)에 다시 중수하였으며 그 후 고종 15년(1878) 법당과 여러 건물을 중건․중수하였다. 경내에는 목탑지, 삼층석탑과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등이 있으며, 대적광전 등 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문화재안내문에서)

 

 

 천왕문

 천왕문 내의 사천왕상 

  

   

   

 범종각

 진남루(임진왜란 때 승군과 수군의 진영이었다함) 

 

   

 진남루 안쪽

기림사 응진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이 건물은 아리한을 모신 전각으로,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조선 후기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을 한 다포식 건물로 과장되지 않은 단정한 건물 형태를 갖추고 있다. 장대석을 한 단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앞․뒷면에는 두리기둥, 측면에는 네모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내․외출목으로, 각 주간에 1구씩 간포를 짜았다. 그 세부는 어칸과 협칸이 약간 달라서 어칸의 쇠서는 약간 위로 휘어 오른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반하여, 귀포에는 연봉이 있는 전혀 다른 모양의 쇠서를 꾸몄다. 가구는 5량이며 대들보와 종보 위에 파련대공을 세우고, 천장은 전체를 빗반자로 하였다. 전체적으로 18세기 이후의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 건물이다.(문화재안내문에서)

  

 

 

 

   

 대적광전

 

기림사 대적광전

보물 제833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이 건물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신라 선덕여왕(632~647)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그 후 6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양식장으로 5차 중수 때인 조선 인조 7년(1629)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외관은 본전 건물다운 웅건함을 갖추었고 내부는 넓고 화려하여 장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장대석의 낮은 기단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전면은 모두 화려한 꽃살분합문을 달았다. 공포는 외3출목, 내5출목으로 살미첨차 끝의 양서에 연봉이 초각되고, 첨차하부가 교두형을 이룬 전형적인 17세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내부는 4개의 고주 외에 따라 2개의 전면 고주를 세워 넓은 공간을 견실히 구축하였으며,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견실한 구조와 장엄한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불전의 하나이다.(문화재안내문에서)

 

 대적광전 내부

 

기림사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보물 제958호)

이 불상은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불로 구성되어 대적광전에 나란히 모셔져 있다. 가운데 불상은거대한 빛임과 동시에 부처의 밝임이 어디에나 두루 비침을 상징하는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이고, 왼쪽 불상은 보신불(報身佛)인 노사나불이며, 오른쪽 불상은 응신불(應身佛) 혹은 화신불(化身佛)로 불리는 석가불이다. 경주 부근에서 보는 불상들과는 얼굴 모습이 많이 다른 특이한 불상이다. 얼굴 모습뿐만 아니라 순금이나 청동으로 된 불상이 아니고, 흙으로 빚은 조선시대의 소조불(塑造佛)이란 점도 독특하다. 비로자나불을 이 절의 주인으로 모셨기에 건물 이름도 대적광전이라 하였다. 비로자나불은 나발을 표현한 머리 위에 육계를 조각하고, 그 아레에 붉은 색 계주를 나타내었다. 가사는 당당한 몸체, 양 어깨에 걸친 통견으로 하였다. 왼손은 주먹을 쥐고, 둘째 손가락을 펴서 오른손 첫째 손가락과 마주잡고 나머지 손가락은 주먹을 쥔 지권인이다. 손 아래로 바지의 끈 매듭이 조금 보인다. 양쪽에 배치된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은 본존인 비로자나불과 거의 같은 모습인데 손 모양만 다르다. 이 두 불상은 서로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흡사하게 조성했다. 왼손은 아래로 내려 무릎에 놓을 듯하게 하고, 오른손은 앞으로 내어들고 있다. 바지를 묶은 끈 위로 섶을 큼지막하게 표현하였다.(慶州市史 3)

 

대적광전 공포

 기림사의 목탑지(가운데 주춧돌이 심초석)

기림사 목탑지

기림사의 목탑지는 약사전 앞에 있는데, 1변의 길이가 약 14m, 높이가 약 0.5m되는 토단 위에 가로. 세로 각 4개씩 모두 16개의 초석이 남아 있어, 탑의 크기가 전면 3칸, 측면 3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앙에 찰주(擦柱를) 세우고, 사리공을 장치하였던 심초석이 남아 있다.(경주시사 3) 

 기림사의 목탑지의 보리수(현재 태풍으로 넘어져서 제거 됨) 

태풍 후에 다시 자라는 보리수

 약사전

 약사전 내부

 응신전

  기림사 삼층석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 양식을 따른 비교적 완전한 석탑이다. 현재 하층 기단은 갑석부터 남아 있고, 상대 중석에는 모서리 기둥과 탱주 한 개씩을 모각하고 있으며, 그 위에 놓여 있는 상대 갑석의 밑면에는 부연이 있다. 또한 갑석의 상면에는 4단으로 된 층급받침이 있다. 그리고 각 탑신석에는 상대 중석면에 모각한 모서리기둥과 같은 것이 있다. 초층의 옥개석은 장대하고 4단의 층급받침을 갖추고 있다. 2.3층의 옥개석 역시 4단의 층급받침을 갖추고 있으며, 체감률이 고르다. 탑 전체가 고준한 감이 엿보인다. 또한 옥개석의 추녀는 낙수면이 완만하며 전각이 역간 반전되어 있다. 현재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 앙화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 통일신라 말기의 석탑이다.(문화재안내문에서)

 

 삼천불전


 관음전

관세음보살의 산스크리트 명칭은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svara)’인데 이것을 뜻으로 번역하면 ‘관자재(觀自在)’가 된다. 여러 이름 가운데 관자재보살과 관세음보살 두 가지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데, 줄여서 관음이라 한다. 관세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핀다는 뜻이며, 관자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의미이다. 관음보살은 대자비의 성자(大悲聖者), 고난을 벗어나게 해 주시는 분(救護苦難者), 두려움을 없애주고 평화를 주는 이(施無畏者), 원만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는 큰 사람(圓通大師) 등으로도 불린다. 이 때문에 관음보살을 모신 법당을 우리는 원통전(圓通殿) 또는 관음전이라 한다.

 

 관음전의 천수천안십일면관세음보살

천수관음은 천 개의 손과 그 손 각각에 눈을 갖춘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42수만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합장한 두 손을 제외한 40수는 각각 육도윤회하는 25종류의 중생을 뜻한다. 즉 이것은 40×25=1,000이 되니 결국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천수관음을 42수로만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발휘한 것이다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아닌 두 눈과 두 손만 가진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뜬다면, 바로 주위의 모든 분들에게 천수관음으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무용

 

 

 

 

 명부전과 삼성각

 

 삼성각

 삼성각 내부(산신탱화. 칠성탱화. 나반존자)

 명부전 내부(지장보살) 

    

 기림사 항공사진(경주시청 자료)

 기림사 답사 후에 대보(호미곶)에 가서 해당화 촬영

 

 낙화된 해당화

 

신라. 천년을 이어온 고도 경주(땅위에 새겨진 불교의 세계) : http://visit.ocp.go.kr/visit/cyber_new/serv06.jsp

'경주 > 경주인근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왕암과 동해구  (0) 2006.02.21
나원리 오층석탑  (0) 2006.02.21
굴불사 답사 자료 사진  (0) 2006.02.21
고선사지 답사 자료 사진  (0) 2006.02.21
한국의 돈황이라 칭하는 골굴사  (0) 2006.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