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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경주인근자료

효소왕릉과 성덕왕릉

노촌魯村 2007. 3. 24. 22:01

효소왕릉

 경주시 조양동 사적 184호로 지정된 능이 효소왕릉이다. 
아버지 31대 신문왕릉은 가공석으로 호석을 짜 놓은 거대한 능이고, 동생 성덕왕릉 또한 화려하고 장엄한 능인데 비해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 왕릉은 모두 두 번의 도굴을 당했다 유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며, 당시 확인된 석실의 규모는 길이 3m, 폭 1m50cm, 높이 1m50cm정도의 크기로 확인되었다. 능에 사용된 돌은 화강석이었으며, 벽의 두께는 30cm정도였다.

삼국사기에 효소왕릉은 현 배반동에 소재한 망덕사지의 동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 전 신문왕릉이 효소왕릉이 아닐까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성덕왕릉

 성덕왕릉은 삼국사기에는 이거사(移車寺) 남쪽이라 했고, 삼국유사 왕력 편에는 동촌(東村) 남쪽(양장곡楊長谷-이라고도 한다)에 능이 있다고 했다.
능의 밑둘레는 52m인데, 봉분더미가 무너지지 않도록 아래쪽에 돌로 호석을 두르고 12지상(十二支像)을 배치하였으며, 그 바깥은 돌기둥을 세워 난간(欄干)을 만들었다. 무덤 남쪽에는 잘 다듬은 돌로 안상이 새겨진 상석(床石)을 설치하고, 더 남쪽 좌우에는 문인석(文人石)이 배치되어 있다.
또 네 마리의 돌사자가 왕릉을 중심으로 도서남북을 향하여 지키도록 배치되어 있으며, 50m 남쪽에는 비석을 세웠던 돌거북이 엎드려 있어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 이룩된 획기적인 왕릉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능에서는 여러 장의 벽돌모양 돌을 한 장으로 합친 넓고 큰 돌로 아래부분을 둘러싸고, 그 굽은 판석이 넘어지지 않도록 턱이 지게 도드라진 기둥돌을 30개 세웠다. 무덤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은 길게하여 돌못이라 부를만한 생김새로 되어 있다. 돌못을 더욱 튼튼하게 하도록 옆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된 두꺼운 돌 30개를 밖에서 기대어 받쳐 놓았다. 이 받침돌 사이사이에는 둥글새김된 12지상을 배치했는데, 신라의 능묘 중에서 단 하나 뿐인 '둥글새김(환조) 12지상'이다. 지금 10개의 상은 목이 떨어져 나가고 없고, 사진에 보이는 유(酉;닭)상은 조금 파손이 되었지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완전한 신(申;원숭이)상은 국립경주박물관 본관 2층에 옮겨 전시되어 있다.
성덕왕릉의 구조와 형식은 이후 신라 왕릉의 규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 조선시대 왕릉 양식의 시원(始原)이 되었다.


 문인상과 사자상

 문인상

 문인상

 12지상(환조로 조각 : 신라 왕릉에서 유일)

 닭상

 사자상

귀부(비석 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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