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화랑유적지

삼랑사(三郞寺)터

노촌魯村 2009. 2. 12. 22:27

11) 삼랑사(三郞寺)터

 

경주시 성건동 서천(西川)가의 주택지 가운데 삼랑사터가 있다. 지금은 당간지주만 하나 남아 이 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그 외의 유적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삼국사기에는 이 절이 진평왕 19년(597)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이 절에 경흥법사(憬興法師)가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우 덕망이 높고 온후한 성품의 스님이었는데, 문무왕이 그의 맏아들 신문왕에게 유언하기를 “경흥법사는 가히 국사로 삼을 만하니 나의 명을 잊지말라.”고 하였다. 신문왕이 즉위하여 그를 높이어 국로(國老)로 삼고 삼랑사에 머물게 하였다. 신문왕이 즉위하여 그를 높이어 국로로 삼고 삼랑사에 머물게 하였다. 경흥이 머문 것은 삼랑사가 지은진지 70년 만의 일이었다.

삼랑사에 대하여 문헌상으로 알려 진 것은 위의 내용이 전부이다. ‘삼랑’이라는 명칭은 세 사람의 화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랑들 사이 혹은 화랑과 낭도들 사이에 신의로서 사귀었던 일화는 많이 남아 있다. 사다함과 무관랑, 죽지랑과 득오곡의 이야기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영랑, 술랑, 남랑, 안상의 사선, 경문왕때의 요원랑, 예흔랑, 계원, 숙종랑 등은 네 사람 사이의 굳은 우정으로 지금까지 전해오는 유명한 일화들이다. 진평왕때의 거열랑, 실처랑, 보동랑 등 삼화지도(三花之徒)나 삼화령, 삼랑사의 지명은 세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신의와 풍류를 전해주는 흔적이다. 충(忠)과 신(信)은 화랑도의 가장 중요한 실천 덕목이었던 것이다.

 

 일정시의 삼랑사지 당간지주

 

'화랑유적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률사(栢栗寺)  (0) 2009.02.12
간묘(諫墓)  (0) 2009.02.12
천관사(天官寺)터  (0) 2009.02.12
신라의 물맛, 재매정  (0) 2009.02.12
경주 동궁과 월지(慶州 東宮과 月池)  (0) 2009.02.12